20대 중반, 경찰학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그때 보통 점심을 독서실 안에 있던 매점에서 먹거나 근처 번화가에서 밥을 먹고 오고는 했다. 그날은 근처 번화가에, 예전에 몇 년 고시공부를 했던 나와 나이가 동갑인 남자아이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에게 내가 아마도 남자친구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그친구가 내게 저렇게 말을 했다. "니 남친은 트럭 같은 사람이네."
나는 요즘에도 종종 그 말이 떠오른다. 트럭 같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그것에 대한 궁금함보다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같은 존재. 즉, 서로 각기 다른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 구남친 중 누군가는 트럭 같은 남자였고, 누군가는 또 뭐 택시 같기도 했을 것이고, 경찰차, 소방차 등등.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코스모스 같고 누군가는 장미 같고.
나는 그때 그 말을 떠올리면서 종종 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경찰차인데 가끔은 로봇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경찰차이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는 모른다? 그러면 악당이 왔을 때 할 수 있는 개인기가 얼마나 줄어들겠는가. 알고 보면 하늘로 날 수 있는 비행기도 될 수 있는데 그걸 모른다면? 주야장천 도로 위에서 스피드만 내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정말 중요한데, 첫 번째 글에서 말했던 강점 찾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하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게 있는 게 바로 ‘생각하기’이다.
이 생각하기가, 아이를 출산하거나 육아를 시작하는 이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에게 시간 맞춰 모유나 분유를 먹인다. 이때 아이를 위한 무언가를 하려면 엄마가 개인 활동을 할 시간을 2~3시간씩 빼내기가 어려워진다. 잔잔한 일처리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아이는 몇 시간에 한 번씩, 혹은 그보다 자주 똥이나 오줌을 기저귀에 싸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고 어른에 비해 자주 배가 고프다. 그것 두 가지만 챙겨도 내 시간은 동강동강 누가 가위질을 한 것처럼 잘라진다. 저녁에는 씻기고 낮잠을 재우고 밤잠을 재우고 이러는 사이 또 내 시간이 잘린다.
아이를 임신했거나, 출산 후 1년까지는 어차피 생활이 과거보다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제약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다른 환경에 자신을 넣어서 성장의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먼저, 나는 첫째 임신 때 1년 동안 다섯 권이 넘는 일기를 썼다. 일기를 태어나서 그렇게 주야장천 열심히 써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실은 그 이후 출산 후에는 그것만큼은 못 썼다. 바쁘니까. 그때 그 5권의 일기장을 채우면서 정말, 정말 정말 나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당시 그냥 노트에다가 작성했지만 빈 노트가 아주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세바시에서 출간된 인생질문 시리즈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그 책에는 질문이 나와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공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것은 오히려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보다는 활동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하기 쉽다. 비교적 시간도 많기에 치열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아마도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층적인 욕구, 가치관 같은 것들을 섬세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꾸준히 일기를 적었고, 둘째를 낳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면서 글쓰기 실력이 급속도로 늘었지만 글쓰기 실력보다 더 중요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파악하게 되었다.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없이 무작정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모래로 집을 만드는 것과 같다. 물론 누군가는 모래로 집을 만들더라도, 만들면서 이것저것 재료를 추가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집을 만들기도 하겠다. 그러나 과거의 나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못했다. 모래로 만드는 집은 늘 무너지기 일쑤였고, 집이 무너진 이유는 내가 열심히 만들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휴대폰을 팔아서, 아파트를 팔아서, 전화 상담을 해서, 병원에서 일해서. 그 일들이 비교적 나와는 맞지 않고 내가 왜 그 일을 해야 했는지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내가 원하는 심층적인 욕구를 알아야 내가 탄 배를 어디로 노를 저을지를 정할 텐데 바람 따라 배가 움직이다가 보니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아이가 1살이라면, 혹은 경력이 단절되었다면, 혹은 과거의 나처럼 단절된 경력조차 없다면 지금이 기회이다. 지금 바로 머릿속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자. 어차피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분유를 타면서, 빨래를 개키면서 하면 되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산책을 하면서 하면 좋다. 와, 정말 지겹다. 지겨워. 할 정도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멍하게 있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이 들 것이고 그 생각을 파고들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만나게 될 것이다.
생각을 모으고 모아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원기옥을 만드는 과정처럼.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멍하게 있는 것 같은 그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지만 어차피 자투리 시간에 생산적인 활동 뭘 하든 단타만 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럴 바에는 가장 하기 쉬운 생각하기부터 시작하자. 생각을 하면서 과거 내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도 가지고 그 사건을 통해 하나의 결론으로만 늘 내렸다면, 여러 번 생각하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도 접근해 보자. 다각도로 생각하면 분명히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도둑을 잡는 경찰차인지,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트럭인지, 불 끄는데 필요한 소방차인지 여행 갈 때 좋은 캠핑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기름을 넣어도 연비가 좋지 않은 소형차쯤 되는 것 같지만 잘 퍼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울퉁불퉁한 길을 차분하게 가는 데 소질이 있다.(속도는 못 내지만) 내가 가는 길을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자투리 시간에 휴대폰을 켜지 않고 딱 5분씩만 생각해 보자. 그 시간을 모아서 하루 1시간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내가 해야 할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눈에 보이게 될 것이다. 나 역시 20대 때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글쓰기를 하고 살 줄은 몰랐지만 새벽녘 둘째의 등을 두드리며 트림소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깨달았다. 바로 내게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재정의가 끝나고 나면 뭘 하던지, 도구에 대한 분석은 차차 하면 될 일이다. 늘 말하지만 누군가의 밑도 끝도 없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말자. 누군가는 할 수 있어도 나는 못할 수도 있다. 트럭이 소형차에게
"너도 노력하면 나만큼 짐을 실을 수 있어."
이 말에 현혹이 되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차분히 자신에 대해, 길게, 오래,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