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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 있었고 없었다

by 김필영




아이들과 함께한 지 두 달째. 두 달이 맞나.. 한 달쯤 지난 건가. 지하철을 타고 병원이나 키즈카페 따위를 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치킨마요나 돈가스를 사 먹고, 저녁에 때때로 함께 바다를 보러 가는 시간들.




그러다가 얼마 전 한의사가 첫째에게 살을 빼야 하고, 턱관절이 조금 삐뚤어진 것 같아서 교정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나는 요가 학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괜찮은 학원도 많이 있었지만 아이들만 그곳에 보내면 요가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큰 맘먹고 3대 1 요가 PT를 끊었다.

첫째, 둘째, 그리고 나.



첫 수업 날


아이들은 역시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키즈요가 선생님이라 그런지 아주 밝은 미소로 유치원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지도했다. 발바닥을 서로 맞대고 하늘을 보도록 해서 두 발을 붙이라는 말에 둘째는 "이 사이 햄과 치즈를 넣으면 햄치즈 토스트가 되지요" 같은 말을 하거나, 첫째는 요가 수련 중 선생님의 요가 매트만 왜 좋은 건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아주 친절하게 지도했다. 동작이 잘 되지 않으면 가서 바로 잡아주었다. 나는 그 관경을 지켜보면서 아 역시 피티를 끊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을 교정하느라 나는 교정을 조금 덜 받았지만 조금도 불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몸이 이렇게 굳었는지, 커졌는지 평소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요가 수업을 듣고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갈라진 뒤꿈치. 예쁘지 않은, 정돈되지 않은 발톱까지.

모든 게 엉망이었다. 팔은 위로 올라가지도 않고 다리를 쭉 뻗는 자세에서는 앞으로 팔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 시간들 사이로도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누워서 팔다리를 내려놓고 쉬는 시간.

나는 그때 툭, 내려놓았다. 어떤 것도 잡지 않고 모든 것을. 몸 구석구석을 거의 10년 만에 다시 썼다는 느낌.





'나를 위한 요가는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는 하네.' 아이들과 함께 한 이 시간들이, 조금 성취와는 뒤떨어진 삶이, 사실은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늘 뒤처진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나를 더 키우는, 살리는 시간인 걸까.

나는 왜 경주마가 된 거지. 도대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을 정확하게 판단 내리려고 했을까.




세상은 사람이 많고, 사람이 적은데.

지하철은 빠르고, 느린데.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 않고, 잘 듣기도 하는데.

나란 인간은 게으르지만 부지런할 때도 있는데.

어떤 기준에 맞춰서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연말을 보냈던 게 아닐까. 누군가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너무 애를 썼던 것 아닐까.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다시 툭, 툭, 팔을 내려놓고 누워서..



육아를 하는 동안 시간이 멈춰서 나도 사람들처럼 뭔가를 배우고,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은 멈추지 않고 여기저기 뭔가를 하고 있다는 말들이 들렸다. 듣고 있으면 아 그 강의 나도 듣고 싶었는데. 아, 그 자격증 나도 따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 든다.



감은 눈 사이 파도가 친다. 바닷물은 내게 가까이 왔다가 다시 멀어진다. 다시 멀어진 파도는 내게 가까이 온다. 왔다 갔다가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면서. 나는 바다를 쳐다본다.

"자 눈을 뜨세요."



선생님의 말. 옆을 보니 벌써 어둠이 조금씩 깔린다. 조금 달라진 듯한 그 공간.


손가락을 폈다가 구부렸다가 반복해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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