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 하면 아, 한다고 알아차려 준다면
강의가 끝나고 셔츠를 입은 채로 이불에 올라갔다. 순식간에 잠이 들었고 깨어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밤 11시 30분. 신문을 챙기고 컴퓨터에 앉았다. 신문 읽기와 글쓰기. 뭐부터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한글을 켰다.
딱히 무슨 말을 하려고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3일 동안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낸 나. 그 시간을 기록해놓으려고 한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각각 다른 주제로, 4시간, 5시간, 6시간 강의가 있었다. 이 3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집에서는 밤새 준비를 하며 꿈결을 헤매고, 강의장에서는 신나게 웃고 떠들었던. 새벽녘까지 준비한 강의가 청중들에게 먹힐 때 안도한다. 그리고 다시 집에 와서는 초조해하면서 다시 교안을 다듬고, 강의 흐름을 중얼거리면서 체크한다. 마지막으로 시연을 한다.
3일 동안 꿈결을 걷는 동안 메일함에서는 몇 개의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주로는 글쓰기였다. 글쓰기 강의.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에 들어온 강의는 모두 강의시간이 4시간 이상이라는 거다. 긴 강의를 계속 하니 신기하게도 긴 강의가 들어온다. 그나저나 어디서 보고 연락을 하는 걸까.
강의가 새롭게 들어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많이 들어온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에 앞서 기쁜 일인가. 그렇게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지하철을 탑승해서는 수업 때 사용하는 온갖 색연필, 사인펜 마분지 따위가 있는 다이소 종이가방을 들고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서서 가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오늘 아침, 첫날 강의에 참석했던 두 명의 학습자가 내게 인사를 했다. (1일과 3일은 같은 업체에서 진행하는 강의. 강의장은 다른데 강의장소가 같은 건물에 있는 상황) 한 명은 강의를 하러 갔던 시각 엘리베이터에서 만났고, 한 명은 강의가 끝난 후 강의실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은 내게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조금은 친해진 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었고 한 두 마디를 나누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 발바닥이 아팠지만 기뻤고,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되었는데, 걱정과 동시에 그들 두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그런 것들 때문에 이 일을 진심으로 기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정말로 내 말을 듣고 있다. 이제는 내면의 마이크인 글이 아니더라도 외부의 실제 마이크를 사용해서 내가 아,라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아,라고 하는 것인 줄을 안다. 나는 그 감각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3일이 무사히 끝났다. 처음 하는 강의가 2개라서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결을 헤매며 성실히 준비했고, 강의장에 일찍 도착해서 강의를 진행했다. 끝나고 나를 호의적으로 봐주는 듯한 학습자 두 명을 마주쳤다. 오늘의 하루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고민했지만 두 명의 얼굴은 선명하다.
내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 중 하나인, 어우 강의 듣기 힘드시겠어요. 앉아있는 분들이 더 힘든 거 잘 알고 있어요라고 하니 엘리베이터에 타 있던 학습자가 말했다.
강사님께서 더 힘들죠. 강의하시느라.
그래. 뭣이 중요할까. 뭘 얼마나 더 잘할까. 이번 주 연재주간이 끝나고 나면 놀랍게도 또 다른 긴 프로젝트의 강의가 시작된다. 그때 또 누군가의 눈빛에서 위로받을 수 있길, 힘을 얻을 수 있길. 삶을 똑바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아주 가벼운 그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있길.
잘할 수 없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자. 내가 아, 하면 아마도 청중은 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