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이 다인이 괴롭히려고 나오는 거 아니야. 그냥 감기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거야. 가란다고 갈 놈이었음 진작 갔겠지. 휴지로 닦자. 짜증 좀 그만 내고.”
“여보, 좀 나갔다 와요.”
퇴근한 남편이 예민해지기 직전에 혼자 산책할 시간을 주었다. 운동화 끈을 대충 묶고 집을 나섰다. 집 앞 도로를 건너고 보도에 들어서서 잠시 멈췄다. 제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보고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좀 더 시야가 길어진 느낌이 들었다. 볼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쳐다보았다.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마스크를 내려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공기에서 가을 냄새가 났다. 짙어진 그 냄새에 코로나와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코로나가 길어지고 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코로나만 아니었어도’로 시작하는 문장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울고불고 콧물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첫째가 선명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쩌면 그게 요즘의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코로나가 1년이 다돼가도록 아직도 혼자서 의미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아이처럼 ‘가가 가라고!’ 소리는 못 지르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휴 코로나 때문에...’로 시작하는 불평불만을 하고 있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 한번 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름에는 하늘이 아파트 꼭대기에 닿을듯해 보였는데 어느새 누가 쌓아 올렸는지 더 높아져있었다. 처음에는 금방 코로나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아이의 콧등에 붙어있는 콧물처럼 그리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 가을이 한번 더 오도록 코로나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몰라. 내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 많은 곳을 가지 못하는 거 아닐까.’
집에 돌아가니 아이들은 둘이서 거실 바닥에 스티커처럼 달라붙어있었다.
“너희 여기서 뭐해? 엄마 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집에 해님이 놀러 와서 안아주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니 머리에 땀이 흥건했지만 둘이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바깥의 햇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의 방식으로 햇빛을 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다가 나도 같이 옆에 엎드렸다가 벌러덩 천장을 보고 다시 누웠다.
‘아이들에게 코스모스 꽃밭에 데리고 가는 대신 코스모스가 그려진 동화책을 읽어주자. 높은 하늘을 보여주는 대신 파란 하늘을 도화지에 그리게 해야지. 놀이터에서 못 노니까 집에서 흙놀이를 해줄까.’
마스크 때문에 코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고 입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다행히 얼굴에서 아직 눈은 막히지 않았다. 눈에는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파란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아무도 예상 못한 시대가 갑자기 와버렸다. 코로나를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고 지금의 햇빛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입과 코를 열심히 가린 채 눈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4살 첫째와 3살 둘째와 함께하는 나의 2020년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