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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Nov 28. 2020

 "나 2003호."

우리는 층간소음 가해자입니다

“아이들 소리요? 저희 집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던걸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명절 때마다 죄인처럼 아랫집에 선물을 드리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나에게 밑에 집 아저씨는 웃어주었다. 그래서 크게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고 밑에 집에서 안 들릴 리는 없지만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자려고 누우니 전화가 왔다.     

“나, 2003호.”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밑에 집 여자가 전화가 왔다. 격양된 목소리에 일순간 상황이 파악되었다.


 “이 시간에 떠드는 애들은 제정신입니까? 애들 하나 뛰지 않게 못 하는 엄마는 뭐 하는 엄마죠? 아니면 평소에는 엄마가 없는 아이들입니까?      

 “아니, 저희는 지금 뛰고 있지 안…….”     

 “안 뛰고 있다고요? 몇 시 몇 분, 다 적어놨는데 불러드릴까요.?”     

 “아뇨. 죄송합니다…….”

손이 떨렸다.      

 “무슨 가시나들이 이렇게 시끄러운지...... 저희 딸이 공부하는데 시끄러워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하네요.”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저희가 시끄럽게는 했는데 그렇다고 그런 표현은...”


 알 수 없는 한기가 찾아왔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10분 내내 죄송합니다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라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맞는 짓인지 헷갈렸다. 첫째가 침대에서 높이뛰기를 하고 둘째는 넘어져서 울고 난리였다.     

 “명절마다 선물세트 주시던데 저희가 거지입니까? 아니면 선물 세트 주고 나니 저희가 좆같아 보여서 계속 뛰는 겁니까?”     

“설마 제가 거지라서 드렸겠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좃같이 보이는 것 같은데 커피랑 김이랑 이 딴 거 필요 없으니까 다 들고 가세요.”     

 “저희가 왜 그렇게 보이겠어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머릿속에는 계속 좆같네요. 하는 말이 돌아다녔다.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맞는 것인지, 어디까지 듣고 있어야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말들이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양쪽 끝에서 말들은 한없이 펼쳐지기만 하고 오므라들지 않았다. 아무튼, 모든 말은 나의 죄송합니다.로 끝이 났다. 죄송합니다를 염불처럼 외우고 있는 사이 밑 집 여자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리고 곧 눈물이 나왔다. 첫째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우는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다인이가 뛰어서 그런 거지? 나 이제 안 뛸게. 미안해 엄마….”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아준 첫째는 5분도 안 되어서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남편과 나는 다음날 부동산에 가서 1층 매물을 몇 개보고 그중 하나를 바로 매매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지인들을 만나면 우리가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부분 우리를 나무랐다.     

 ‘그렇게 욕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듣고 있니. 너희도 같이 뭐라고 하지! 이사를 하려면 시끄러운 쪽이 가야지. 왜 너희가 도망치듯이 이사를 하니.’          




층간소음에 정해진 정답은 없을 것이다. 분유 뚜껑 하나만 떨어뜨려도 바리바리 올라와서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쌍둥이 형제가 달리기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답이 없는 것에서의 답을 찾으려면 각자의 기준을 이해해주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늦게 알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아무튼 우리가 조심했건 조심하지 않았던 우리는 층간소음 가해자였다. 피해를 주었다. 조심했지만, 아이들도 혼냈지만, 아무튼 그런 것들은 모두 내 기준이었다. 아무리 밑 집에서 심한 말을 한다고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건 아니다. 같이 화를 내었더라면 마음이 지금처럼 편안할까. 남편과 나는 다시 괜찮아져서 이사할 집에 달 식탁 등을 고르며 설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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