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얼굴로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에 가서 무표정으로 타닥타닥 습관처럼 글을 쓰다가 글을 쓰지 않는지 석 달이나 됐다. 새로운 글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그사이에 파마를 했다.
그리고 가끔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저녁 메뉴에 대해 생각했다. 눈두덩이에 아이섀도를 처음 발라보았다. 치마를 두 벌 샀다. 책을 두세 권 읽었고 아이들과 매일 산책하러 나갔다. 친구들을 일주일에 세 번 만났고 남편과 이사할 집에 넣을 가구를 쇼핑하고 대출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남편과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글을 생각했던 공간은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것으로 채워졌다.
그저께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병아리가 나왔다. 오빠와 5살이나 차이가 났던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오빠가 사 온 병아리를 키웠다. 꿈속에서 어린 내가 병아리를 신기한 듯이 보고 있으니 오빠는 평소처럼 만지지 말라고 했다.
‘만지면 죽는 거야. 만지지 말고 먹이를 주고 밥에는 뚜껑을 닫고 자, 여기 이렇게 숨구멍을 뚫어주면 돼.’
오빠는 송곳으로 병아리 상자에 구멍을 송송 뚫어주었다. 숨구멍만 확실히 뚫고 만지지 않으면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우리 믿음 때문인지 병아리는 정말로 닭까지 자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자 뚜껑을 닫아도 병아리가 숨이 막혀 죽지는 않았을 텐데 오빠는 무슨 의식처럼 항상 숨구멍을 뚫어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그 구멍 때문에 우리 병아리가 숨을 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꿈을 꾸고 난 뒤 오랜만에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으로 왔다. 다시 아무거나 써봐야지. 애매한 색깔에 이름을 정해주면 고유의 색이 되듯이 여기 이곳에서 아무것이나 쓰다 보면 나만의 글이 언젠가 책이 되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믿는다면 말이다. 푸드덕거리면서 몇 초씩 날아다녔던 닭을 생각하자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