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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10. 2020

다시 55kg이 되었다

나무, 들판, 산이 되는 기분은 나쁘지 만은 않다

 단짝이었던 B가 하필 예뻤던 바람에 나는 상대적으로 더 못생겨 보였다. 학창 시절 그녀에게는 늘 애인이 있었는데 나와 그 남자 친구를 같이 만나는 걸 좋아했다. 그때 당시 비싼 문물이었던 KFC에서 애인과 햄버거를 먹을 때에도 나는 함께였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닭 뼈가 그 남자의 손위에 내려앉는 그 풍경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는 했다.     









B는 나를 좋아해서 어떻게든 나를 데리고 다녔지만 정작

나는 B가 혼자 있든 남자 친구와 있든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안경을 끼고 뚱뚱했던 나는 그 남자들과 함께일 때면 약간 스스로가 사람이 아닌 나무, 들판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헬스장을 다녀도 B만 고백을 받았다. 내 운동을 방해하며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던 덕분에 하루 1시간씩 꼬박꼬박 러닝머신을 탔다.     







B는 상대적으로 바빴다. 공부도 잘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학교 공부도 해야 했고 남자 친구도 틈틈이 만나야 했다. 그 당시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줄넘기, 그리고 소설책 읽기, 매점에서 쉬는 시간마다 빵 사 먹기. 정도였는데 그것들을 원 없이 했다.          







 결혼하고 오랜만에 B의 집에 놀러 갔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가에 누워서 오래간만에 남자 얘기를 듣다 보니 신세계였다. 주위에 요즘 들어 남자들에게 고백을 받은 여자들이 많아졌다. 결혼한 사실을 말하면 시무룩해하거나 그래도 상관없다고 하거나 미안해하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여러 반응의 남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근데 걔한테 전화가 온 거야. 밤 10시에!”     

B도 건너들은 꼴통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니 근데 결혼했어도 고백받는 애들이 생각보다 많네. 나는 약간, 이제 내가 나무, 들, 바람 이런 존재…….”     

 


 B가 웃었다. 옆에 체중계가 있어서 슬그머니 올라가 보았다. 55㎏이다. 다시 학생 때처럼 55㎏이 되었다. 죽냐 사냐의 문제는 아니지만 뚱뚱해졌다.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분명히 아니지만, 다시 나무, 들판, 산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다이어리를 펼쳐서 일기를 쓸 수 있고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소파 위에 누워 한참 동안 책도 읽을 수 있다. 육아 때문에 나만의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큰 고민 없이 자유롭다. 밤 10시, 휴대폰과 머릿속은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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