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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13. 2020

염색할까?

 “염색할까 말까? 네가 보기엔 어때.”     

며칠 동안 친구 여럿을 괴롭혔다.

 '염색이 안 어울리는 색으로 되면 어쩌지? 또 그 후 계속 뿌리 염색을 하면 머릿결이 상하지 않을까? 1년쯤 지나 애써 기른 머리를 잘라내면 어떡하지? 돈도 벌지 않는데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건가? 코로나 시대에 미용실을 가도 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햇살이 없는 일요일 오후 혼자서 산책을 했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들고 나와서 노트북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머리를 파묻다시피 해서 커피를 마시다가 다 마시고 난 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마스크를 끼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코로나가 심해질수록 밖에 사람이 많아진다. 아이들도 있고 강아지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유달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늙으면 모두 산과 나무, 혹은 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걸까. 벤치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눈빛에는 힘이 없어 보였지만 내일도 모레도 또 나오겠다는 포스가 있었다.          

30분쯤 걷다가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멘 어깨 쪽이 아파져 와 벤치에 잠시 앉았다. 옆에는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있었다. 여자는 발로 유모차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아이를 재우고 있었고 남편은 그 옆에 앉아서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지금 손님을 초대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이 시간에 피곤해서 밥도 못 차리면서. 사람들 오면 뻔하잖아. 피곤하고.”     

여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옆에서 쓰레기통을 찾아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뻔하다고 말하는 남자를 보았다. 억울하고 화나고 어딘지 고집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시 걸어서 호수가 쪽으로 갔다. 가까이 가니 물속으로 내 얼굴이 보였다.     

 ‘바보 같아, 뭐래. 쓸데없는 고민이나 하고 있네.’     

호숫가에 비친 흐린 내가 말했다.     

 ‘네가 여기 지금 발만 내딛어도 죽을 텐데. 쓸데없는 고민이나 하고 있네. 무지개색으로 염색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을.’          






 피곤하지만 굳이 친구를 초대하고 싶어 했던 아기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안 해도 되는 일을 할 때 뻔하지 않은 결말이 나오는 건 아닐까. 매일 반복되는 그 뻔한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것 아닐까.

굳이 안 해도 되는 염색을 하기로 했다. 이쯤 적으면 내 염색에 대한 변명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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