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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15. 2020

"어서 파티복으로 갈아입어요."


육퇴가 유달리 늦은 날 아이들은 잠들고 나는 파김치는 파김치인데 생각하는 파김치 상태가 되었다.     

 

‘아, 나 왜 이렇게 찌질할까. 왜 화를 못 참았을까. 근데 혹시 나 이대로 애만 키우다가 늙어 죽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소파에 그림처럼 누웠다. 위에는 노란색 티, 바지는 하늘색 옷을 입고서. 밖에서는 고고한 흰색 회색 아이보리 검정 이런 색만 입으면서 집에서는 빨주노초파남보 내키는 대로 입는다.

늦은 퇴근 후 씻고 나온 남편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여보, 파티복은 어디 나 두고 이런 옷을 입고 있어요? 어서 파티복으로 갈아입어요."

 “네? 파티복이요?”

나는 내가 입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고민하며 옷장에서 위아래로 세트로 된 수면 잠옷을 입고 거실로 가니 남편이 파티복이 예쁘다면서 들고 온 치킨을 꺼냈다.

“여보, 고생했어요. 치킨 먹어요.”     


파티를 시작하고도 한동안 힘없이 치킨만 오물오물 씹고 있으니 훅하고 눈앞에 뭔가가 펼쳐졌다.

 “여보, 이것 좀 봐봐요.”

남편은  본인이 보고 아주 재밌었거나 현재 쟁점이 되는 영상을 갑자기 보여준다. 나는 덕분에 기생충 영화감독이 수상소감 이야기하는 것을 4번이나 보았고,  요즘은 부동산 관련 유튜브를 계속 보여줘서 약간의 지식이 생겼다.     



 치킨을 다 먹어갈 무렵 남편이 평소 트위치에서 게임방송을 보는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도대체 트위치가 뭐예요?”     

내 질문에 자신이 트위치를 선호하는지, 트위치에서 유명한 사람은 누구인지, 이 사람이 어떤 식으로 방송을 하는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음식을 다 먹더니 서랍장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남편은 김을 들고 와서 또 먹는다. 김은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안주 겸 반찬이다. 한 번에 네 통은 먹는다. 까먹은 김 봉지를 굳이 식탁에 두지도 않고 들고 가스레인지 옆에 올려다 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남편은 바쁘게 움직이고 할 말도 많다.     



항상 처음에는 마지못해 파티복으로 갈아입고 밤 파티를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나도 좀 집중하게 된다. 얘기를 듣고 있다. 신기하다. 너무 바빠서 눈을 둘 데가 너무 많고. 그 시선이 가는 곳마다 집중하다가 보면 아무튼 ‘생각하는 파김치’에서 그냥 ‘파김치’가 된다.




 밤마다 파티복을 입고서 파티를 한다. 예쁜 옷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묻혀놓은 밥풀떼기가 묻는 옷은 벗고 새로운 잠옷으로 갈아입고서, 정신없이 신나게 이야기를 듣는다. 이 글을 쓰다가 보니 파티에 초대해준 남편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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