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고민이 많다. 프리랜서로서의 생활에 권태로움이 왔다 해야 하나. 처음 영상 일을 할 때만 하더라도 모든 게 다 두근거리고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담아 밤샘 작업을 했던 때가 있었다. 마치 간절히도 바라던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나는 매일 두근거리고 설렜다. 그럴 때는 왠지 모를 힘이 솟구쳐 스스로 소진되지도 않는다. 일을 굳이 굳이 찾아서 만든다. 가령 카메라도 없을 때 핸드폰 하나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브이로그를 찍었던 일처럼 말이다.
영상을 시작한 지 6년이 되어간다. 회사에 들어가 일도 해보고 크진 않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들고자 작은 회사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열정만 가지고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열정 없이 일하는 건 또 문제.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고 하는데 적당함의 기준은 또 뭐란 말인가. 사전에 쳐보면 적당함은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라고 하는데 의미가 와닿는가. 나는 전혀. 나만 그런가. 누가 적당함의 기준을 아신다면 말씀해 주시길.
프리랜서인 내가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들을 꺼내보자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겠네 멋있다!"
"혼자 일하니까 스트레스는 안 받겠다"
"나도 프리랜서나 해볼까"
회사에 다니며 받는 스트레스들도 있으시겠으나 나의 삶에도 스트레스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를 위한 방패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오로지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곤혹스러운 상황일 때면 경험 많은 사람이 짠하니 나타나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야 할지 막아야 할지 아니면 그냥 맞아야 할지를 순전히 나 혼자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종종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웨딩 촬영을 한다. 작년 한 해에만 백커플 가까이 촬영했다. 평균적으로 매주 두 커플 정도 촬영을 했다. 주중에는 편집과 상담을 하고 주말에는 촬영하러 다니면서 정신없이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 웨딩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코로나가 빵하고 터졌다. 웨딩홀에는 하객들이 사라졌고 결혼식을 미루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웨딩홀에는 하객들 하나 없이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하기도 했으니 나 같은 촬영자들에게는 문제가 꽤나 컸다. 잡혀있던 예약도 변동이 생겼다. 결혼식 날짜가 변경되거나 종종 촬영이 취소되기도 했다. 촬영과 편집을 하기에도 정신없는 와중에 이런 상황이 닥치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푸념 섞인 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가 터졌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아뿔싸. 화요일에 코로나 판정을 받았다. 당시 자가 격리를 오일 정도 해야 했으니 이번 주말 촬영은 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 스케줄 상으로는 주말 모두 촬영이 가득한 상황. 나의 안위는 생각할 겨를 없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신랑 신부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대체 감독을 찾아야 했다. 주변 촬영 작가, 감독님들에게 모두 연락했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 촬영 감독 구직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다. 공고를 하나씩 다 확인하고 검토해서 결국 촬영 감독을 구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모든 촬영이 무사히 끝이 났다.
너무 급박한 상황인지라 내 몸 아픈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이 들었다. 다시 오지 않을 누군가의 결혼식에 피해를 끼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이 생각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내 인생 첫 자가 격리가 끝이 났다.
이런 상황이 흔히 벌어지는 상황은 아니겠다. 내 프리랜서 생활 중에 아마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꽤나 큰 사건이었겠다. 이걸 계기로 깨달은 것 하나는 정말 나를 위한 방패는 없다는 것. 나를 지켜줄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으니 온전히 나 하나만 믿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는 것.
이러니 내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언제 어떻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늘 안고 사는 기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날임에도 머리가 지끈하는 이유는 다 이 때문이겠다. 어렸을 적 생각 없이 살았을 때는 고민 많은 사람이 멋있어 보였는데 고민 많은 사람이 돼보니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부럽다.
돌이켜보면 나는 권태로움을 내가 사랑한 것들에서 발견했다. 그것도 뜨겁게 사랑한 것들에서 말이다. 적당히 사랑한 것들에게는 권태로움 하나 없이 조금씩 휘발되며 어느샌가 사라졌다. 사라질지도 모른 채. 일에 관한 권태는 그만큼 사랑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겠다. 그리고 그 권태는 어찌 보면 사랑의 속성 중 하나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이 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