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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Jul 19. 2023

세상 모든 것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다

죽기 전에는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가령 한국 제일 높은 곳에서 하는 번지점프를 해보는 것. 내 사업자를 직접 내보는 것. 모든 대륙을 한 번씩은 갔다 오는 것. 그리고 내 이름으로된 책을 출간해 보는 것.

글을 쓰는 일을 대단히 사랑하는 건 아니다. 나는 서점 가기를 좋아한다. 촬영차 지방에 가기라도 하면 인근 서점을 방문하는 일이 내게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방문한 곳에서 혹여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책 한 권은 꼭 구매한다. 독립서점들을 응원하는 마음에서랄까.

올해 들어오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하고 싶었던 거 하나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책을 쓰기로 했다. 처음부터 수려한 글을 쓸 수 없었기에 시작한 건 일기였다. 나에게 꾸밈없이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쯤 만들어 두기로 했다. 그곳에 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짧거나 길게 쓴다.

일기를 쓰다가 이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백편 정도의 이야기를 쓰면 책 한 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첫 글의 제목 앞에 숫자 백을 붙였다. 글을 쓸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 마치 책 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리듯이 말이다. 현재 그곳에는 오십여 개의 이야기가 모여있다.

나의 글 소재는 주로 일상에서 벌어진다. 사소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나 나름의 글쓰기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내게 일어난 일들을 세밀하게 보려고 한다. 이 훈련은 일기를 쓰며 터득한 것 같다. 별거 아닌 것들을 일기장에 기록하는 일들이 내 하루를 마무리하는 단계였으니까.

매일 내게 다양한 삶들이 주어진다지만 결국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반복의 연속이다.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다시 자고 그리고 일어나고. 나는 초보 작가니 소재가 고갈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점점 내 이야기는 지극히 사소해지고 세밀해진다.

이제는 내 글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가 궁금해졌다. SNS에 어느 한 작가님께서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았다. 전문 작가님께서 보는 내 글은 어떤 수준일까. 그리고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를 알려주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역시 피드백 없이 이제껏 나 혼자 쓴 글은 오로지 나를 위한 글이었다. 그 글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는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됐다. 이제까지 썼던 방식을 허물고 새로운 방식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가님께 주중에 쓴 글을 보여드릴 때면 늘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방금 막 일어난 쌩얼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눈곱도 떼지 않은 그런 얼굴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글을 작가님께 보여드렸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얼마 전 얼굴에 자리 잡은 여드름을 짰다.”

내 얼굴에 난 여드름 얘기까지 글에 적기 시작했다. 여드름 나름대로 이야기를 가질 수 있지 않나. 이 글의 메시지는 꾸준함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나는 여드름을 이용하여 꾸준함을 얘기한 것이었다. 글을 보시고 싶으시다면 ‘멀리 가고 싶은 나를 위해’라는 글을 참고하시길. 이 글을 보시고 작가님께서 말씀하셨다.

“에녹씨는 숨 쉬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실 것 같아요”

그 말에 작가님과 함께 껄껄 웃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세상 모든 것들은 적어도 하나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 그게 한편의 이야기든 하나의 문장이든 아니면 하나의 단어이든 말이다.

그 순간 소재 관련하여 막힌 것만 같은 마음이 뻥 하니 뚫렸다. 그리고 일상을 바라볼 때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하나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한다. 그렇게 잡힌 생각을 가지고 내 생각들을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 덕분에 내 물건들이 더 소중해졌다. 그리고 내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그들과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한곳에 모아 책을 만드는 일. 어쩌면 나는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소중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중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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