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타를 친지 십 년이 조금 넘었다. 지금도 내 방 안에 있는 기타는 나와 함께한 지 딱 십 년이 되었다. 중저가의 기타. 탑 솔리드 기타로 기타 상판이 합판이 아닌 원목으로 되어있는 기타이다. 기타가 원목일수록 더 좋은 소리가 난다.
처음 기타를 배우게 된 이유는 음악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악기 하나를 다루고 싶었다. 악기를 다루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조금은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타를 칠 줄 알면 어디서 으스댈 줄 알았나. 지금 생각하면 너무 유치한 생각이지만 그때의 나는 내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래서 어떻게든 빨리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에 9시간은 기타만 잡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기타를 잡았다. 가족끼리 대화할 때도 손가락으로 줄을 누르며 빨리 무뎌지기를 바랐다. 고통은 어찌나 심하던지 처음부터 굳은살이 박히기까지 한 달은 넘게 걸린 듯하다. 너무 심할 때는 손가락 마디 끝에 피멍이 들기도 했으니 말 다 했지.
그렇게 굳은살이 박히고 기타를 하루 종일 칠 때는 내가 뭐라도 된 것만 같았다. 괜히 음악 한다는 분위기에 취했었다. 중2병이 꽤나 늦게 온 듯 나는 마트에 갈 때도 기타를 메고 나갔다. 마트에서 살 거 사고 그대로 집에 들어오는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내 인생 가장 돌이키고 싶은 한순간이 있다면
“노래방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기타를 친 일”
내 인생 최대의 실수. 최대의 수치. 그냥 최악의 순간. 그날은 정말 기타를 칠 일이 있어서 메고 나갔다. 어쩌다 보니 저녁에 그 친구와 만나게 되었다. 당시 서로 노래방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노래방에 들어갔다. 그렇게 신나게 놀던 중 분위기에 취했는지 요즘 내가 연습하는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기타를 꺼냈다. 그녀의 동의도 없이 시작된 나만의 쇼케이스. 노래방 특유의 반주 위로 쌓이는 내 탑 솔리드 기타. 천장에 화려하게 돌아가는 미러볼.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녀는 탬버린을 사분의 사박자에 맞춰 정박으로 찰랑거렸다.
노래가 끝나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기타를 잘 친다는 말을 해줬다. 그리고 그 뒤로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그 당시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니 다들 깔깔 웃었다. 그들이 웃을 때는 딱 두 가지이기에. 정말 웃기거나, 정말 웃기거나. 그렇게 한참을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나서야 그녀에게서 연락이 끊긴 이유를 알게 됐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만 앞선다면 이 상황을 또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내 방 안에 기타를 보면 수치스러운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십 년 전 수치스러운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목격자. 기타에 입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기타에 관한 추억. 그 추억이 꽤나 부끄러운 순간이었지만 그 덕에 나는 이 기타에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 가장 창피한 순간을 함께한 사람과는 왠지 모를 정이 생기지 않나. 나는 그러던데.
생각해 보면 수치스러운 순간 외에도 좋은 추억들이 있었다. 백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기도. 이스라엘에서는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버스킹을 하기도. 그리고 누군가 너무 좋아서 노래를 만들고 싶어질 때 손수 코드를 적어가며 기타를 튕기기도 했다. 시간이 더 흐른다면 이 기타로 미래의 내 아내와 아이와 함께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상에는 이야기 담긴 것들이 참 많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