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
성격유형검사를 하면 몇 년 동안은 ENFP의 유형이 나왔었다. 이 유형은 재기발랄한 활동가로 누구와도 말을 잘하고 텐션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성격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난 몇 년 동안은 사람들과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낯선 이와 대화하기를 별로 꺼리지 않았고 혼자 있는 것 보다 사람들과 있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해졌달까. 원래도 생각이 많았지만 전보다 더욱 많아진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일기는 내가 글을 쓰는 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는 스스로와 깊이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요즘 나의 성향이 조금씩 변해가는 중이다. 나 스스로는 크게 느끼지 못한 부분들인데 타인과 대화할 때면 자각하게 된다. 사람들의 머릿속의 나는 재기발랄한 활동가이니 그분들의 입장에서도 내가 좀 어색할 수도.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없냐”
“왜 이렇게 집에 가고 싶어 하냐”
“오늘 내 친구랑 같이 노는 거 좀 별로냐”
전과 같았으면 “너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우리는 집에 언제 갈 수 있어”하는 말을 내가 들었을 정도로 꽤나 에너지틱한 사람이었다. 최근에 바뀐 나의 성향이 나조차 어색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 가면 전과 같이 말하기를 노력하고 리액션하기에 열심이었다. 그러고 만남이 끝이 나고 집에 돌아가기라도 하면 버스 안에서 초점 잃은 동태 마냥 하늘을 응시하곤 했다. 수분기 쫘악 빠지고 추욱 늘어진 채로 한숨 쉬는 동태 말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대외적인 이미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오늘 왜 그래 너답지 않게” 이다. 이럴 때면 드라마에서 사춘기 딸이 엄마에게 흔하게 뱉는 말을 하곤 한다.
‘나다운 게 뭔데!’
그래 나다운 게 뭘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단 말이지. 성격유형검사가 요즘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나를 더욱 잘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나를 알고 싶어서 한 검사인데 그 결과에 나를 가둬 두는 것만 같은 느낌은 왜일까. 재기발랄한 활동가인 나는 언제나 말이 많고 활발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또 내 유형의 특징 중 하나는 즉흥을 선호한다는 것. 여행을 다닐 때나 친구와 약속할 때면 어떤 계획 없이 일정을 잡곤 한다. 하지만 나름 건강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오늘 할 일은 계획을 짜는 편이다. 이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면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성격유형검사를 통해 나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나는 나를 더 모르겠다. 상상력이 풍부했다가 어떤 순간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타인의 눈물에 지극히 이성적이기도. 그리고 오늘 저녁은 떡볶이를 꼭 먹어야지 다짐했건만 순두부찌개를 먹기도 하니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더 성격 유형 검사를 해보니 나의 성향이 역시나 바뀌어 있었다. 외향적이기보다 내향적으로 변해버렸다. 그럼 나는 이제 내향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걸까. 글쎄.
어떤 한 유형으로 나를 정하기보다는 하나의 상황을 다양하게 반응하는 나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 모습이 앞뒤 맞지 않는 모순덩어리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