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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Sep 01. 2023

이유 없는 뜀박질

출근길 뛰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나까지 조급해진다.


촬영을 나가는 날이면 장비를 하나씩 점검한다. 카메라에 먼지는 안 꼈는지. 촬영 메모리는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베터리는 몇 퍼센트인지. 삼각대에 이상은 없는지. 그렇게 아이 돌보듯 장비를 하나씩 체크한다. 마지막으로 직접 만든 장비 점검표를 보면서 빠진 장비는 없는지 대조해 본다.


카메라 캐리어 하나. 삼각대 두 대. 카메라 백팩 하나.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이 아이들과 함께 나의 출근길이 시작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이웃집 할아버지와 만난다. 보따리상처럼 장비를 들고 있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신다. 그리고 내게 물으신다.


“어디 여행 가나 봐?”


결혼식을 촬영하다 보니 복장도 꽤나 단정하고 이것저것 가방이 많으니 여행 가는 줄 아셨나 보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거울 안에 비친 나를 보니 충분히 오해하실 것 같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할아버님께 오늘 하루도 조심하시라는 말을 건넨 채 우린 헤어졌다.


‘조심? 무엇을 조심하라는 거지?’


나는 차가 없는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촬영을 나가기라도 하면 이게 은근히 불편하다. 장비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지 않나. 어수선한 사람들 사이로 장비들을 잘 안착 시켜야 하지 않나. 이게 은근히 눈치도 보인단 말이지. 게다가 이걸 들고 뛰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어휴. 그래서 도착해야 하는 시간보다 이십 분 정도 일찍 출발하는 편이다.


지하철 환승을 위해 개찰구로 이동하는 중 내 뒤로 어느 한 학생이 뛰기 시작한다. 그 뒤를 이어서 구두를 신은 아저씨도 뛰시더니 백발의 할머님들까지 손잡고 뛰신다. 마라톤 대회 때 “탕”하고 울리는 총격에 어수선한 출발 분위기와 흡사했다.


한두 사람이 앞지르는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수십 사람이 나를 앞지르니 조금씩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그 수십 명 안에 할머님들까지 있으니 내 마음이 다 조급해지더라. 그 마음에 불을 지피며 나의 레이스도 시작됐다.


카메라 케리어와 백팩 그리고 삼각대를 함께 뛰었다. 열심히 뛰었다. 내가 어떻게 발을 내딛는지도 모른 채 뛰었다. 정신없이 뛰는 와중에 내 케리어에 내 발이 걸렸다. 쿵. 나는 넘어졌다.


사람이 너무 창피하면 고통도 잊는 법. 나는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프지 않아야 했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연하게 걸었다. 절뚝거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승강장까지 왔건만 전철은 이미 지나간 후였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뛰었단 말인가’


다음 전철을 타더라도 늦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니 다다음 전철을 타더라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뛰기 싫어서 일찍 나온 건데 사람들이 뛰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조급해졌나 보다. 아니 사실 나를 뛰게 만든 건 할머님들의 공이 컸다. 진짜 뛰어야 되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조급함의 대가로 내게 남은 건 약간의 상처와 커다란 수치심. 그 수치심과 함께 넉넉히 출발해서 생겼던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졌다. 정말 이 출근길이 지옥철과도 같았다.


바닥에 넘어지며 휩쓸린 무릎을 앞뒤로 움직여 보니 다행히 잘 움직인다. 오늘 촬영에는 문제는 없겠다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때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할아버님께 건넨 말 한마디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 오늘 하루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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