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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Oct 17. 2023

김치순두부 찌개 맛집

어느 날 단골 순두부 찌갯집을 갔다. 또 오셨네요 하는 사장님의 인사를 받고 기분 좋게 입장. 내가 매번 앉는 자리에는 다른 손님이 앉아있으니 맞은편 에어컨 밑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사장님 김치 순두부찌개 하나 주세요.” 이 집 김치 순두부가 얼마나 맛있는지 내가 이곳에서 사 먹은 순두부찌개만 해도 백여 그릇은 될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순두부에 돈을 꽤나 썼잖아?


보글보글. 지글지글. 하얀 옷 입고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비주얼. 뜨거움을 오랫동안 유지해 주는 뚝배기. 토옥. 그 위로 떨어지는 날계란. 이 맛 때문에 이곳을 칠년 동안 찾아왔다. 사장님께서 나의 식성을 잘 아시기에 애초에 많이 주시는 조미김까지. 이건 뭐 완벽한 조합이지. 신발매장에서 누군가 내게 ‘찾으시는 사이즈가 있냐’ 묻는 것만으로 나는 매장을 나가버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순두부 사장님의 관심 속에서는 사업성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김을 더 챙겨주시지 않으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순두부찌개를 한 그릇 다 비워냈다. 나가면서 매번 하는 인사는 잘 먹었습니다 보다는 김 많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그러면 사장님은 나중에 또 김을 많이 챙겨주신다. 어쩌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는 건 사장님이 아닌 내가 아닌가 하는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집으로 기분 좋게 돌아가는 길에 커피 유명 브랜드에서 커피를 산다. 아차차. 집에 샴푸가 떨어졌으니 샴푸도 하나 사자. 남산처럼 불러온 배와 손에 한가득 안겨있는 것들 사이로 교통카드를 꺼내 든다. 띡. 버스 기사 아저씨께 짧은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는다. 창문으로 내려오는 햇살은 왜 이리 좋은 거야. 창문을 가볍게 열고 바람을 맞는다. 지나가는 광역버스에 매연을 맞긴 했지만 그마저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그런 날.


그렇게 창밖을 보며 가는데 나는 물건들을 꽤나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처음 탄 버스에 내 몸을 맡긴다는 것. 오늘 처음 간 카페에서 내린 커피를 아무 의심 없이 마신다는 것. 또, 이 샴푸는 어떠한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는 이 제품을 나는 이 년간 써오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허허하며 소박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칠년 동안 다닌 순두부찌개 사장님과도 처음이 있었다. 그 당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소개해서 간 곳이었다. 무엇이 맛있는지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저건 무슨 맛이고 이건 무슨 맛인지 하나하나 들으며 메뉴를 선택했다. 그렇게 처음 선택한 짬뽕 순두부는 개인적으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너~무 매웠기에. 그럼에도 꾸역꾸역 먹어냈다. 다른 메뉴도 많았으니 한 번 더 찾아가 보자해서 먹은 게 김치 순두부였다. 찌개 위로 날계란을 하나 토옥 깼다. 그리고, 한 숟갈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그래, 이거지!’

 

그 뒤로 이곳과 순두부찌개 협약을 맺었다.


기가 막힌 맛 하나만으로 이 찌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집을 넘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맛집. 맛 하나만으로 나는 이 순두부집과 오래된 신뢰 관계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순두부와 달리 사람에 한해서는 경계의 마음부터 든다. 내게 해가 될 사람인지 도움이 될 사람인지를 재기에 바쁘다. 처음 마주한 짧은 시간만으로 이 사람을 판단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내게 해가 될 것만 같으면 그 사람에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나만 아는 경계주의보가 빨갛게 울리기 시작한다.


처음 접하는 것에 이유 없는 신뢰를 보내는 것보다 경계하는 것이 더 안전한 방법이겠지. 하지만 경계할 이유를 기필코 찾아내겠다는 못돼먹은 마음이 들어서 문제. 계속해서 검토해 보고 꼬투리 하나 발견되지 않으면 그제서야 마음을 건넨다. 혼자 속으로 판단하는 예민한 마음은 나를 꽤 피곤하게 만든단 말이지.


그렇게 내적 평가를 하다 보면 스스로 ‘너 도대체 뭔데’ 하는 마음이 불쑥 찾아온다. 내가 뭐라고 누구를 섣불리 판단하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마저 쉽게 판단해 버리는 마음이 미안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하는 마음을 조금 풀고 한 번 더 들어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 시각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니까 그 사람을 나의 잣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상대의 시각으로 한 번 더 이해해 보는 그런 사람. 이마저도 실패할 수 있지만 괜찮다. 그렇게 듣고 이해하다 보면 김치 순두부 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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