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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ug 15. 2023

소중한 건 갖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

"청춘이 짧다는 사실을 젊음은 모르는 것 같아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좋은 노래를 찾고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플레이 리스트를 뒤적거린다. 어떤 때는 허탕 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취향 저격의 노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발견된 노래는 한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 나의 하루를 더 멋있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좋은 노래들을 만나면 꼭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마치 어렸을 적 보물찾기 놀이하다 발견한 선물에 신이나 자랑하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 플레이리스트에 적혀있는 댓글 읽기를 좋아한다. 익명성이 보장된 곳이라 가까운 사람에게도 하지 못할 말들을 그곳에 적어놓기도 하니까.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 채 읽으니 온전히 내 주관대로 해석할 수 있다. 성격유형 노래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 보면 본인이 어떤 유형인지 밝히고 이 유형의 사람은 어떻게 공략하면 좋은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쭈욱 적어놓는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어떤 유형인지 알고 있다면 그 상대를 대입시키며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는 곳.


청춘이라는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면 몽환적인 분위기에 가슴이 아려 오는 노래들이 모여있다. 개인적으로 밤에 산책하면서 노래 듣기를 좋아하는데 그 산책과 어울릴 법한 노래. 다른 사람들은 이 플레이 리스트를 어떻게 듣는지 궁금하여 댓글들을 쭈욱 읽어보다가 좋아요 2개 정도 달린 댓글이 눈에 밟혔다. 댓글 그대로 가져오자면


"최근에 딸을 결혼시켰습니다. 늘 집에 같이 있던 딸 아이가 출가를 하니 마음이 적적하네요. 그러던 중 이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왔는데 제가 결혼했을 때가 생각났어요. 청춘이 짧다는 사실을 젊음은 모르는 것 같아요."


평소라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갔을 말인데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콕 하니 박혔다. 나는 꿈을 꾸는 내가 좋다. 미래에 되고 싶은 내가 있고 그 모습을 위해 오늘을 노력하는 그런 꿈 말이다. 그리고 정말 내가 그리는 모습이 언젠가 될 것만 같다.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오늘이 소중하고 열심히 살 수 있는 이유도 내게 그런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다. 좋은 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의미가 다 다르게 해석되기에 나도 그 좋은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그런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기저귀를 능숙하게 잘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기저귀 연습을 해야 했다. 마트에 갔다. 신생아 크기의 인형을 샀다. 그리고 기저귀 코너에 갔다. 하나만 필요했는데 다량으로 사기에는 무리였다. 집 주변 육아를 하는 누나를 찾아가 기저귀 동냥을 했다. 모든 준비는 완료됐다.


유튜브를 보면서 연습했는데 처음에는 손이 낯설고 어색했다. 영상을 보는 거랑 직접 해보는 거랑은 역시 천지 차이. 이걸 하루에도 3~4번을 해야 하는 거구나 하면서 혼자 웃었다. 인형으로 기저귀 연습하는 내가 웃겼다. 그러면서 나중에 내 아이와 어느 정도 소통이 되는 때가 온다면 오늘 일을 꼭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나는 아빠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누군가의 남편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 다만 내가 바라는 꿈같은 모습은 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그 꿈을 위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만으로 나는 그 시간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이 청춘이라고 믿는다.


청춘은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과도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혹여 그 도전의 끝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 과정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나는 그 과정이 오늘이라고 믿고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가능성이 무한한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 결혼도 출산도 힘든 요즘이지만 청춘이라는 말을 빌려 미래의 좋은 아빠를 꿈꾸어 본다.


청춘이 짧다는 사실을 젊음은 모른다고 말씀하신 분이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 저 댓글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누군가의 아버지를 꿈꾸고 있는 나로서 저분의 삶이 부럽기만 하다. 그리고 청춘이 지나가신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좋은 부모는 자녀가 결혼해도 계속 꿈꿀 수 있지 않나. 그런 의미로 아직 청춘이시라는 말을 답글로 달고 싶었지만 조용히 그 댓글에 하트만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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