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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May 22. 2023

스승의 날의 편지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은 지 어느새 10년이 지났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승의 날이면 연락드리곤 했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부터는 한 해도 연락을 드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코로나도 끝이 난 걸 핑계 삼아 이렇게 조촐한 편지라도 써서 보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의 나이는 29이셨습니다. 10년이 지났으니 이제 제가 그 나이가 되었어요. 종종 저희에게 아홉수라고 신세를 한탄하시면서 너희는 이 나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납니다. 그때에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10년이란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갈 줄 몰랐어요. 이제는 제가 친한 동생들에게 선생님이 하셨던 그 말씀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영상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군문제도 조금 늦었지만 해결했고요. 회사는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종 바다 한 가운데에 혼자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노를 젓는 듯한 기분 말이에요. 저희를 한 번씩 혼내실 때면 그 이유는 공부를 못하기보다 사람됨이 엇나가는 것 같아 혼내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마음을 어린 나이에 저는 알았나 봅니다. 당시에도 매를 드셨던 선생님을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요즘 그때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꾸지람이 듣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29의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19의 저는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커 보이기만 했습니다. 인생을 다 깨달은 사람처럼 어떤 고민도 없고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 같았어요. 저의 진로를 상담해 주실 때면 여러 가지 방안들을 제시해 주는 멋있는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열심히 한 저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 주시려고도 하셨죠. 저희를 위해 매를 드시며 혼을 내실 때 훔치셨던 눈물에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제 인생도 참 어렵고 막막하기만 한데 그때의 선생님은 어떠하셨을까요. 저는 선생님께 많은 빚을 진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때처럼 지각합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지금 지각하면 나중에 사회 나가서는 지각 안 할 거 같니. 지금 고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지각하는 거다." 우스갯소리만 같던 선생님의 말씀이 시간이 많이 흘러서도 저를 쿡쿡 찌르곤 해요. 지각을 해 자책하고 있을 때면 한 번씩 그 말씀이 떠올라 웃기도 합니다.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으로 석식비를 아끼기 위해 3년간 급식당번을 한 제게 친구들 몰래 새 문제집을 전해주시기도 하셨지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다만, 잘하지 못했지만요.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것에 실패하면 후회는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또다시 실패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저를 위해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39의 선생님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저는 29이 된 지금도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제 앞가림을 하기에도 버겁기만 합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기에도 한없이 가벼운 존재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전히 지각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 보면 저는 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는 애써 귀담아듣지 않으려 했던 어른들의 한마디를 지금은 누군가 한 번쯤은 해주길 내심 바라기도 합니다.


프리랜서의 삶은 혼자 많은 것들을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하나부터 열이 있으면 열을 다 해야 하는 일이에요. 학생 때면은 학교의 모든 것들이 정해져 그에 맞춰 하루를 흘려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 반대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되려 힘은 더 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내 인생은 오죽하겠니"라고 한탄하시며 의도치 않게 저를 달래실 것만 같아요.


지난 10년동안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신 선생님처럼 저도 앞으로의 10년 속에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는 걸 꿈꾸고 있습니다. 늘 학생 같았던 제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거라는 말이 쑥스러우면서도 시간은 그렇게 멋진 아버지로 저를 만들어 갈 것만 같아요. 그때는 지금 보다 조금은 더 멋있는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지각 잘하는 철부지 학생 같기만 할까요.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그때에도 편지를 보내며 안부 전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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