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에녹 Jul 17. 2024

사랑에 빠졌던 시간

"어떤 사람들한테 사랑이란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쓸데없는 데서 시작되는 거야. 그런 게 없으면 시작되지가 않아." <노르웨이의 숲_무라카미 하루키>


요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헤어진 지 일 년이 좀 지나기도 했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고 마음을 전해도 봤지만 이어지지는 않기도 했다. 고맙게도 나를 좋아해 준 사람도 있었지만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누군가에게 사랑에 대해 언급할 정도의 사랑을 해봤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말하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사랑을 받을 때보다 사랑을 줄 때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다. 사랑을 받는 것에는 왠지 모를 미안함이 묻어난다.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줄 때에는 마음 한 켠에 가득 차오르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요즘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마음껏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래서 소개팅도 해보았다. 평소 자만추를 추구하는 아니 억지스러운 것에 몸서리를 치는 탓에 이 사람과 연애해도 될지 말지를 판가름하는 소개팅이 나로서는 꽤나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연이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걸음을 떼보았다. 운이 좋게도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났다.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나에게 그녀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즐거웠다. 조금은 엉뚱한 제스처와 말들을 신기해하며 한껏 바라보기도 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게 이리도 즐거울 수 있는 일일까. 여러 가지 주제도 아닌 한 가지의 대화 주제였음에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


매장이 마감 시간이니 나가주셔야 한다는 직원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우리는 매장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다행히도 나의 요청에 그녀 또한 응해주었고 우리는 그날부로 오일을 내리 만났다.


한 번 만나면 기본 네 시간. 다음 날이 휴일일 때에는 저녁에 만나 새벽 다섯 시까지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바다를 보러 가던 중 장롱면허 그녀가 무슨 용기였는지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다는 말에 운전대를 넘겨주기도 했다. 최고 속력 15km. 모든 신경을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남았지만 괜찮았다. 때로는 어디에 있는지보다 누구와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다행히도 이른 새벽인지라 도로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다.


새벽의 바닷가는 파도 소리가 꽤나 크게 들린다. 주변의 어떤 소음보다 바다의 소리만 들리는 기분.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려 부단히 애썼다. 이렇게 된 김에 일출도 보고 가는 거 어떠냐는 나의 말에 내일 일정이 있어서 이제는 집에 가야 한다며 나를 돌려세운다.


그 뒤로 우리는 여러 날을 만나고 여러 날을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우리의 만남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지한 교재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아홉 가지가 좋더라도 한 가지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해야 하나. 천천히 만나면서 해결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여름 밤의 꿈이 끝났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진 못했으나 한가지 알게 된 사실은 사랑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하게 시작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선택 하나에 나를 뒤흔드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들을 조금씩 발견해 가면 오늘 하루를 조금은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어떤 사람들한테 사랑이란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쓸데없는 데서 시작되기도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수요 없는 공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