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평생 한 아파트에서만 살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올라온 인천. 그 집에서 한 번도 이사를 간 적이 없는 우리 부모님. 자연스레 이 동네에서 쌓인 추억들이 한가득이다. 놀이터는 주차장으로 변하였고 자주 가던 만화책방은 인테리어 사무실로 바뀌었고 문구점을 하셨던 아주머니는 같은자리에서 이제 치킨을 파신다.
삼십 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갖고 있기란 여간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그중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 주는 것들이 있다. 엘리베이터. 십 층에 사는 나를 집 앞까지 모셔다주는 전용 여객기. 어렸을 때는 이 엘리베이터가 신기했다. 사람들을 집어삼키더니 1~2분이 지나 다시 열리면 탔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우리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그리고 나도 매일 내 전용 여객기에 삼켜졌다.
어린이집이 끝나면 나는 엄마랑 같이 집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버튼들이 신기해 자꾸 만지작 거리곤했다. 저 위에 내 손이 닿지 않을 위치에 있던 비상 버튼부터 그 아래 층수 버튼 그리고 팔만 뻗으면 어린 내 손에도 편히 닿는 닫힘 버튼까지. 참을성이 없는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내가 가야 할 층수보다 닫힘 버튼을 먼저 눌렀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그러셨다.
"그거 알아? 닫힘 버튼을 누르면 500원씩 내야 해"
500원? 당시 유행했던 포켓몬빵이 500원했던시절이라 내게는 큰 돈이었다. 빨래를 개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일을 하면 용돈으로 200원을 받았다. 닫힘 버튼을 두 번만 눌러도 집안일을 다섯 번이나 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 닫힘 버튼이 무겁게 느껴졌다. 한동안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닫힘 버튼에 손가락이 가다가도 멈칫했다. 엘리베이터가 자연스레 닫힐 때까지 열심히 기다렸다. 기다리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나는 돈을 번 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집에 가서 엄마한테 내가 돈 벌어다 줬다며 신나게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어떤 의미로 그 말씀을 내게 하셨는지 깨달아지는 나이가 됐다. 엘리베이터 이용료는 이용자의 닫힘 버튼 사용료가 아닌 세대수의 관리비로 운영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 나이. 포켓몬 빵 수십개도 살 수 있는 돈을 벌게 된 나이 말이다. 엄마의 가르침이 무색하게 여전히 엘리베이터를 타면 닫힘 버튼을 자주 누른다.
나처럼 기다리기 힘든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몇 년 전부터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대기시간이 생겼다. 한 번 타면 20초부터 40초까지 엘리베이터가 열려있는 것이다. 닫힘 버튼은 있지만 무용지물이 되어 눌러도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대기시간. 천천히 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배려.
일 특성상 촬영 장비를 갖고 다니다 보니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한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흘러도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옆에서는 어느 한 어머님께서 닫힘 버튼을 연거푸 누르신다. 닫히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시고는 머리 위에 몇층인지 알려주는 불빛만을 응시하신다.
그러던 중 저 맞은편에서 한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다급히 뛰어오신다.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잔잔한 속력에 나는 사람들을 비집고 열림 버튼을 누른다. 열림 버튼을 누르고 나서 또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끌차 수레를 세워두신 할머니는 한숨을 푹 쉬신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탑승하시는 할아버지. 눈치를 보듯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핸드폰을 보는 나. 그렇게 침묵의 30초가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설계가 정말 배려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피어났다. 기다리기 위해 닫힘 버튼의 의미도 퇴색시켰지만 열림 버튼을 다시 누르면 또 기다려야 한다는 피로에 애꿎게도 마음의 닫힘 버튼을 자꾸만 누른다. 닫힘 버튼이 작동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한 번 더 눌러보는 것처럼 누군가를 기다려줄 여유가 우리에게 사라진 듯하다.
순간 닫힘 버튼을 누르면 500원씩 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