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 종일 이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의 고민을 이 개월 정도 했다는 뜻. 머리카락에 얼키설키 묻은 슬라임마냥 떼려면 뗄수록 더 깊이 묻어버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고통을 체감하고 있다는 뜻.
이 도파민을 단절시키기 위해 나는 지금도 금욕 중이다. 샤워할 때 영상을 보기 위해 갖고 들어가던 핸드폰을 들고 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핸드폰 배경 화면을 흑백으로 바꿔놓으니 핸드폰을 보지 않게 된다고 하여 나도 핸드폰 화면의 색상을 다 빼보기도 한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땐 핸드폰이 아닌 책을 꺼낸다.
사랑도 감정이 아닌 의지로 하는 거랬나. 내 생각에 이별 또한 어느 정도의 의지가 필요한 것 같다. 나를 해하기만 하는 사랑과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가 않다. 이러한 생각은 점점 내가 도파민으로부터 벗어나게끔 도와준다. 정신없이 나쁜 여자에게 끌려가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건강한 삶을 회복하고 싶다는 다짐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도파민과의 단절을 잘 준비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폭싹 속았수다.”
요즘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다들 이 드라마 얘기를 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의 방언으로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뜻을 가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 얘기 같다느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느니 대사 한 줄 한 줄이 너무 주옥같다느니 등 드라마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 지인들. 최근 3년간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는 동생 놈도 이 드라마 얘기만 나오면 입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도파민과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내 주변 한두 사람만 알고 있다. 그런 나의 심정도 모르고 드라마에 꽂힌 이들은 내게 꼭 보라는 말을 건넨다. 살을 빼겠다고 다짐한 순간 주변에 알려야 한다는 이유가 이런 것인가. 덥석, 그 드라마를 보는 순간 참아왔던 나의 시간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다. 도파민을 향해 군침을 질질 흘리던 나의 무의식이 고삐가 풀린 채 미친 듯이 날아다닐 것만 같은 그 해방감.
그렇게 내 안에서 일화만 보고 말까 하는 속삭임에 나는 무너져버렸다. 보는 순간 빨려 들어가듯 보게 됐다. 작업을 할 때도 샤워할 때도 드라마를 틀어 놓는다. 연기는 또 어찌나 다들 잘하시는지 그들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이제껏 지워왔던 도파민의 흔적들을 폭싹 속았수다가 하나씩 채워가기 시작한다. 일화만 보고 더 이상 보지 않을 거라는 나의 다짐에 되려 내가 폭싹 속아버렸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모든 편을 다 봐버렸다. 다 보고 나서 인생의 드라마를 만난 것 같은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내가 한 번 더 이 도파민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뭔가를 끊어낸다는 게 참으로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나 나는 의지가 약해 도망가고 싶은 것에서 벗어나는 걸 어려워한다. 그때 띠링 하고 울리는 핸드폰 알림. 우리 제품을 사달라는 광고성 메세지. 갑자기 핸드폰이 더 꼴 보기가 싫어진다.
나의 무력한 상태를 자극이라도 하듯 그 알림이 내 정신을 맑게 한다. 저놈을 가둬야겠다. 이리저리 내 방에서 가둘만한 것들을 찾는다. 지난번 선물로 받은 선물 박스가 눈에 보인다. 어차피 내용물은 다 빼고 없으니 빈 상자의 용도를 찾아주리라. 저항도 못 하는 핸드폰을 들어 박스에 팽개치듯 던진다. 그렇게 핸드폰을 감싸고 있는 박스의 모양새가 퍽이나 관짝같다.
일종의 핸드폰을 죽여버리는 의식. 하루에 조금씩 시간을 할애해 핸드폰을 박스에 넣는다. 그것도 산채로. 베터리는 끄지 않는다. 핸드폰으로는 타이머를 맞춘다. 처음에는 오 분 그다음은 십 분. 매일 조금씩 나의 핸드폰은 저 관짝과도 같은 박스 안에서 작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 시간이 내게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켜 이제 꺼내줄 때라며 알람을 울려도 일부러 몇분 더 지켜보기도 한다.
도파민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매일 작은 전쟁을 치른다.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치는 순간 나는 어느덧 화면 너머 그 어딘가에 살고 있게 된다.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도파민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니 정확히는 조절하고 싶다. 내가 원할 때 쓰고 버릴 수 있게 온전히 내 통제 아래 도파민을 두고 싶다.
도파민과의 전쟁에서 싸울 때마다 도전한 횟수보다 실패의 횟수가 늘 일씩 더 많다. 이제는 절대 지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하지만 이겨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감에 포기하는 것이 아닌 한 번 더 도전했다는 것에 용기를 얻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