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입을 살아가는 나는 사람을 이해하기가 전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20대 초입에는 생각이 더 말랑했는지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이 너무나 재밌고 쉬웠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나와 생각이 다른 이 지점이 재밌다. 라는 말들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재밌고 때로는 흥분되기도 했다.
요즘 들어 어째서인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상당히 줄었다. 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뭐랄까 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쉽지가 않음이 이제 인정이 된다고 해야 하나. 관심과 표현 그리고 다정함은 체력에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깨달아지는 요즘이다.
운동은 왜 해야 할까. 저마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보통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한단다. 몸이 망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며. 쳇, 예전 형누나들이나 하는 소리를 이제 내 또래의 집단에서 듣게 되는 나이라니. 이렇게 빠르게 흘러간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예전의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운동의 선순환이 좋았다.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지고 몸이 좋아지면 옷태가 살아나고 멋있어진 나는 어느 정도의 자존감이 채워졌다. 그래서 몸이 더 좋아지고 싶어 다시 운동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걸 운동의 선순환이라고 여기며 매일같이 운동했다.
지금의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이해심을 기르기 위해 한다. 이해심? 이 삭막한 세상 나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얘기를 듣더라도 약속을 잡고 만나서 대화하고 싶고 내가 애정하는 사람의 이해 안 되는 모습에는 한 번이라도 더 그럴 수 있어 하는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다.
그런 이해심은 체력에서부터 비롯되더라. 상대를 들여다보고 내면을 관찰하는 일은 마치 나무로 빽빽한 숲을 나 혼자 탐험하는 것만 같다. 충분히 그 안을 헤쳐나갈 자신이 있더라도 자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 숲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그 안을 걸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그리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그 숲을 오랫동안 걷기 위한 체력이 필요하다.
이해하는 것에 지쳐 포기하고 끊어내는 사람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 도저히 이해 안되는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대를 탓하기보다 너의 숲에 더이상 머무르지 않겠다며 돌아서는 나도 되돌아볼줄 아는 사람이고싶다. 세상 모든 인류를 사랑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사랑 안에서 포기보다 이해를 선택하는 그런 사람.
그러니 오늘 내가 해야하는 일은 집 밖으로 나가 헬스장에서 아령 하나 더 드는 일이겠다. 그렇게 근육이 자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마음도 한 뼘은 더 자라나진않을까 믿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