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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SN 변 호 사 님 Nov 22. 2020

미국 로스쿨 LL.M. 입학하기

추천서 초안 쓰기

≪미국 로스쿨 LL.M. 입학하기 - 추천서 준비하기≫ https://brunch.co.kr/@kr-uslawyer/14 에서 계속  


1. 추천인을 정한 기준


내가 추천인 세 분을 정한 기준은 (1) 나를 잘 알고 좋게 평가해주시는 분, (2) 영어로 추천서를 써주실 분이었다. 


≪미국 로스쿨 LL.M. 입학하기 - 추천서 준비하기≫에서 쓴 처럼, 각 학교들이 추천인 요건으로 '내 학업이나 실무 능력을 잘 아는 사람일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첫번째 요건은 아주 중요했다. 거기다 추천서는 당연히 영어로 쓰여야 하므로 영작문이 가능하실 것이라는 두번째 요건도 고려 안할 수가 없었다.  


어디보자, 나를 좋게 써주실 분이 누구신가


교수님들 중에서는 A. 공식 지도교수님이면서 영어로 날 가르치신 분, B. 영어강의는 하지 않으셨지만 공식 지도교수님이셨고 모의재판대회에서도 지도해주신 분으로 좁혔다. 일단 두 분 모두 지도교수님으로서 나를 잘 아시고 좋게 평가해주실 거라 생각했다. A 교수님은, 당연히 영작이 가능하셨기 때문에 문제 없이 처음부터 그분을 떠올렸다. B 교수님의 경우 직접 영작하실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하버드에 제출할 CV에 모의재판대회 수상경력을 썼기 때문에 그에 대응해서 대회를 지도하신 그 분이 추천서를 써주시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함께 일한 파트너 변호사님 중에서는 딱 한 분 C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와 일을 많이 해서 나를 잘 아시고 좋게 평가해주실 분은 그 외에도 있었지만, 영어로 함께 일한 파트너는 C 한 분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 주변에는 C 만이 국제적으로 '아시아 뫄뫄 변호사회 대표,' 이런 식으로 직함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내가 다닌 회사가 미국 로펌이 아닌 이상, 미국 로스쿨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직함이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음. 


2. A 교수님의 추천서 


A 교수님은 흔쾌히 승낙하시면서, 내게 초안을 써오라 하셨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추천서가 나오기를 바라는지 아셔야 한다는 이유였다.  


생각해보니 자기소개서, CV, 에세이, 학업계획서 같은 것은 다 일련의 맥락에 맞춰서 써서 제출하는 거라서, 추천서도 그 맥락에 맞춰 쓰여지는 게 맞았다. 자기소개서나 CV 같은 게 특정한 방향을 향해 살아온 내 과거 커리어를 담는 글이라면, 에세이는 그 특정한 방향을 내가 선택한 이유라든가 그 특정한 방향에 대한 내 의견을 담는 글이고, 학업계획서는 그 특정한 방향을 미국 로스쿨에서 어떻게 더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글일 것이다. 그렇다면 추천서도, 그런 특정한 방향과 같은 맥락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CV나 에세이에서 강조하는 내 특성, 하지만 내가 직접 작성하는 서류 안에는 내용의 통일성 때문이라든가 지면제한 때문에 자세히 담지 못하는 내용, 동시에 A 교수님이라면 아실만한 내용으로 초안을 써야했다.  


초안 쓰는 건 ... 되게 힘들었다. 


아직 내 학업계획서나 에세이도 완성이 안된 상태에서 가닥을 잡아 초안을 쓰려니 이건 뭐 교수님이 아니라 나부터 준비가 안된 거였다. 일단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던 기조방향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A 교수님과 이메일 주고 받은 걸 다 뽑아봤다. 교수님과 알고 지낸지 거의 9-10년은 됐기 때문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교수님 수업 들었을 때 필기한 파일이나 공부한 내용도 되짚어봤다. 교수님과의 커뮤니케이션과, 내 기조방향이 일치하는 교집합을 이끌어내는 작업부터가 시간 깨나 드는 작업이었다. 

 

아이고 힘들어


주경야독하는 중에 고생해서 영문 초안을 보내드렸다. 교수님은 출장 중이고 바쁘시고 해서 아마 몇 주 지나 마감일 다가와서 와이파이도 불안정한 해외 호텔방에서 업로드를 하셨고 그것때문에 미안해하셨던 것 같은데, 사실 그때까지 나도 계속 에세이를 쓰고 있던 터라서 전혀 걱정도 안했고 문제될 것도 없었다.  나야말로 마감 5분 전에 서류 제출했으니 뭐...  


노 프라블럼, 겨스님!


나중에 합격하고 나서 교수님이 직접 쓰셨던 추천서를 보여주셨는데, 고심하고 공들여서 쓰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쓴 초안이 거의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아이디어만 얻으셨던 것 같다. 교수님이 나로부터 느끼신 바나 내가 했던 작업에 대한 평가 같은 게 진솔하게 들어있었다. 영어 문장도 고급스럽고 해서 되게 감사했다.  


3. B 교수님의 추천서 


B 교수님도 흔쾌히 승낙하셨다. 나에게 초안을 써오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헉, 제가요? 라고 (맘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내가 만약 교수님을 위해 추천서를 쓴다고 생각하면 진짜 막막하다. 내가 뭐 교수님과 절친도 아니고 접촉했던 몇몇 사건들만 바탕으로, 그것도 8년도 더 지난 일을 기억해내서 완성된 글로 쓰는 건 너무 어렵지. 그러니까 부탁하는 사람이 적어도 얘깃거리와 방향 정도는 제공을 해줘야 한다. 그게 실제로 쓰이는지 안쓰이는지는 나중 문제고.  


Give them facts!


그리고 국문으로 쓰실 예정이라서 내가 영문 번역을 하든지  그러면 안된다  전문 번역인을 구해야 했다. 일단 법률 쪽 번역가를 구하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물어물어 알아보니 시간당 임금도 너무 비싸서 이쪽은 포기했다. 번역가 출신인 동기 변호사가 떠올라 이 친구에게 부탁을 했는데 승낙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웠다.  


컬럼비아였나 시카고였나, 어떤 로스쿨에서는 추천인이 영작을 안하는 경우 전문 번역인이 번역을 하고 번역공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학교가 추천서를 읽어보면 이게 번역한 건지 추천인이 직접 영작을 한 건지 다 안다면서. 한동안 고민했다. 이대로라면 B 교수님이 국문으로 추천서를 쓰시면 전문 번역인에게 번역을 의뢰하고, 번역인과 교수님을 모두 공증인에게 데려가 공증을 받아야 한다. 와우~ 이건 일이 너무 많아. 그냥 A 교수님이 국문으로 추천서를 완성해서 내 동기에게 토스하시고, 내 동기가 번역을 다 해서 다시 교수님께 드리면 교수님이 최종적으로 업로드 하는 걸로 결정했다. 해당 학교에는 A 교수님의 추천서는 아쉽지만 안내기로.  


내가 B 교수님 수업에서 뭘 했더라 


다시 B 교수님과 나의 접점을 찾는 과거 찾기가 시작됐다. 교수님이 가르치신 수업에서 내가 제출했던 과제를, 8년 전 이메일을 뒤져뒤져 찾았다. 뭐 까딱 잘못했으면 한글 파일이 너무 오래돼서 깨져서 복구가 안됐을지도. 그 당시엔 되게 잘 썼다고 생각하면서 제출했는데 어른이 돼서 다시 보니까 그냥 그런 수준이었다. 그냥 열심히 썼다는 것만 드러나더라.  


모의재판대회 때 상 받았던 모의서면도 과거 하드와 이메일을 뒤져뒤져 다 찾아냈다. 덕분에 옛날 파일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게 됐다. 다시 읽어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왜 진작 내 역사를 데이터베이스화해두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도 들고. 


다시 내가 내 추천서를 쓰는 일이 시작됐다. 이젠 뭐 컨텐츠는 갖춰졌는데, 이걸 나를 칭찬하는 식으로 쓰려니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못할 지경이었다. 이걸 보실 B 교수님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실지, 한 문장 쓸 때마다 엄청 단 사탕을 입에 문 것처럼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아이고 내 손발이야


어찌저찌 써서 보내드렸다. 교수님은 금방 완성하시더니 내 동기 변호사에게 국문 추천서를 보내셨다(고 했다). 나에겐 끝까지 안보내셨다.  굳이 내가 볼 이유도 없고.  동기도 며칠 걸려 번역을 다 했고, 나 모르는 사이에 교수님께서 최종 업로드까지 하셨다. 내가 받은 추천서 세 통 중에 가장 빨리 진행된 추천서였다.   


추천서 +1 을 획득하셨습니다.

 

나중에 수고비를 건네줄 겸 번역해준 동기를 만나서 밥을 먹었는데, 그 때 동기가 하는 말이 "교수님께서 BHSN 너를 굉장히 아끼시는 마음이 드러나더라"는 거였다. 내가 썼던 초안은 많이 사라졌고 교수님이 직접 쓰신 부분이 많았다고. 동기 스스로도 각박한 변호사일만 하다가, 오랜만에 누군가가 진심으로 쓴 글을 읽으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기쁜 마음으로 번역했다고 했다. 두 분에게 너무나 고마웠고, 지금도 참 고맙다.

  

3. C 파트너 변호사님의 추천서


이 분도 의외로 바로 승낙을 해주셨다. 워낙 바쁜 분이라서 거절 하실 줄 알았거든. 몇번이고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LL.M.에서 유의해야 할 것과 내 커리어에 대해 조언을 해주셔서 더 감사했다. 일이 하나 둘씩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휴~ 이제 승낙은 다 받았다.


그러나. 역시나 내가 초안을 쓰게 되었는데, 초안을 쓰는 이로서 가장 고생한 경우가 되었다. 일단 추천서에 넣고 싶은 내용이 많았다. 나를 세일즈 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인지, CV에는 썼지만 에세이나 학업계획서에에서는 구체화하지 못한 내용을 추천서에 거의 뭐 쏟아붓는 식으로 초안을 썼더니 문단 간격을 줄여도 3장이 꽉 찼다.  


초안부터가 수준 높은 작문이어야 했다. 


게다가 영어로 직접 쓰실 A 교수님과 달리, C 변호사님은 내가 써온 초안에 살짝 수정만 하시거나 삭제만 하실 예정이었기 때문에, 내가 쓴 초안이 곧 최종본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론적으로는 그렇게는 안됐다. 거의 다 삭제하셔서...) 그래서 처음부터 완성작을 써내야 했다. 


내가 영어로 쓰고, 미국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검토를 받고, 또 내가 고치고 하는 걸 반복했다. 이미 11월에 들어섰기 때문에 (하버드와 예일 로스쿨은 마감이 매해 12월 1일) 시간이 없었다. 하루 간 시차를 두고, 내가 고쳐 쓴 초안을 밤에 미국에 보내면 친구가 새벽에 수정의견을 주고, 아침에 받아본 내가 또 고쳐서 밤에 미국으로 보내고 하기를 1-2주일 동안 했다. 일과시간에는 일하고 틈틈이 남는 시간에 초안을 썼는데 그날 안에 미국에 못보내면 수정의견을 받는 건 이틀 후가 될 것이었으므로 무조건 그 날 안에는 고쳐쓰기를 마쳐야 했다.   


으아아아악 빨리 쓰고 집에 가자!!


고치고 또 고쳐서 더 이상 고치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 3장짜리 초안을 C 변호사님께 보냈다. 당시 변호사님께 보냈던 이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거의 뭐 협박식으로 '애써서 썼으니 사인만 해주시라'는 내용이더라. 

제발 그대로 사인만 해주셨으면 좋았으련만, C 변호사님은 "이건 내가 알지 못하는 내용이니 빼고, 저건 너무 칭찬 일색이니 빼고, 장점만 적었으니 단점도 적어라" 라고 하셨다. 추천인이 객관적으로 피추천인을 평가해서 쓰는 편지가 추천서이니 중립적인 톤으로 다시 쓰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야 신빙성이 있다고. 주여...  


사람살류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기 때문에 삭제하라는 부분은 다 삭제하고 단점(같아 보이는 장점)을 추가했다. 형용사와 부사도 다 빼고 건조한 톤으로 문장을 바꿨다. 그래도 워낙 써 놓은 게 많아서 아무리 삭제하고 축소해도 2장 반이 넘어가더라.    


어쨌거나 뚁땽하긴 함.


또다시 미국인 친구를 괴롭히는 과정을 거친 끝에 C 변호사님의 추천서도 겨우 제출되었다. 좀 재밌었던 건, 추천서를 써주신 세 분 중 한 분을 제외하고는 본인 자랑을 상당량 쓰셨다는 점이었다. 그분들의 위치에 가보지 않아서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내 후배들의 추천서를 써 줄 지위가 되면 내 자랑부터 쓰게 될까?   


"음하하하 내가 낸데~" 약간 이런 느낌?


추천서를 해결하고 났더니 이미 11월 중반이 넘어있었다. 아직도 에세이와 학업계획서, 원서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이젠 에세이를 쓸 차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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