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HSN 변 호 사 님 Nov 16. 2020

한국의 법 감정 vs. 미국의 법 감정

바 시험은 즐기면서 공부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실체법적으로 미국법과 한국법을 비교하는 게 재밌어서였다.  


불법행위, 상법, 조합, 대리 같은 건 한국법과 너무 비슷해서 공부하기가 좋았고, 가족법, 신탁, 유증, 물권법, 민사소송법, 증거법은 한국법과 너무 달라서 아예 한국법은 잊어버리고 백지상태로 공부해서 오히려 쉬웠다. 한국법과 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안통해서 더 열심히 공부한 과목은 헌법과 형사소송법.    



두 과목에서는 한국식 멘탈리티랑 미국식 멘탈리티가 너무 달랐다. 좀 상반되기는 하는데, 미국 헌법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또 형사소송법에서는 경찰력에 엄청 힘을 실어준다. 미국과 비교해보면, 한국 헌법은 집단적인 질서를 중요하게 보지만, 막상 형사소송법 상으로는 경찰력이 미약하다(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이걸 단적으로 알아차리게 된 계기는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 First Amendment Right (Freedom of Speech) 파트였다.   



헌법 상 표현의 자유 (First Amendment Right)


우리나라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는 "Congress shall make no law ...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둘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보장하는 양상은 서로 다르다. 이건 헌법의 해석과 법 감정의 문제다.  


한국의 법 감정


한국에서 「외교관서 100m 내에서는 그 외교관서를 비방하는 구호를 외쳐서는 안된다」는 법이 있다고 하자. 내 생각엔 이 법은 당연히 합헌이다. 


우리나라 헌법이 법률의 위헌여부를 판단할 때 쓰는 원칙이 뭔가? 비례원칙이다. 이 가상의 법에 따르면, 나는 100m 밖에서나 다른 매체를 통해 해당 외교관서를 비방할 수도 있고, 100m 안에서는 비방 아닌 내용으로 샤우팅을 할 수도 있고, 100m 안에서 구호를 외치는 대신 비방하는 팻말을 들고 서 있어도 된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으므로 비례원칙 상 합헌. 


헌법재판소에서는 비례원칙을 적용해서 이미 집시법 규정(외교관서 100m 내에서 그 외교관서를 대상으로 집회 및 시위를 하면 처벌하는 규정, 현행 집시법 제11조 제5호 가목)을 합헌 결정했다. http://search.ccourt.go.kr/ths/pr/ths_pr0101_P1.do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미국식 법 감정


그럼 미국은 어떨까? 바 시험 문제집에 같은 문제가 나왔다. "미국 의회가 이런 법을 제정했다: 「외교관서 몇몇 피트 내에서는 그 외교관서를 비방하는 구호를 외쳐서는 안된다.」. 합헌인가 위헌인가?"  답은 위헌.   


헐... 내가 리걸 마인드가 없는 건가, 문제집이 잘못된 건가.



더 정확히는, '중차대한 공익이 없으면 위헌 (violates First Amendment unless there is a compelling state interst)'이다. 위헌이 기본이다. 왜? 표현의 내용에 따라서 허불허를 결정하니까. 외교관서에 대한 표현이 비방이면 불허하고 비방이 아니면 허용하는 식으로 국가가 표현의 내용에 관여하니까. 


오히려 100m 내에서 어떤 내용이든지 특정 데시벨 이상으로 구호를 외치면 안된다는 법이었으면 합헌이었을 것이다. 그건 내용이 아니라 중립적으로 표현의 방식만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한국 헌법의 비례원칙은 규제의 폭이 얼마나 넒은가 좁은가,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제한되는가 보장되는가,하는 범위설정에 초점이 있다면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미국 헌법의 심사기준은 규제의 범위가 넓든 좁든 상관 없이 국가가 표현의 내용을 규제하는가 아닌가, 하는 검열여부에 초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새 멘탈리티를 소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 바 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미 갖고 있던 한국적인 법지식과 법감정으로 문제를 풀어서 맞춘 적도 꽤 있었다(불법행위나 계약법 같이 한국법과 유사한 과목에서) - 나중에 제대로 공부하면서 이런 일은 없어졌지만 -. 하지만 난 앞으로도 한국식 법감정으로는 미국 헌법 상 표현의 자유 문제는 절대 맞추지 못할 것이다.  



법 감정의 차이는 국민정서의 차이


미드나 일상생활에서 미국인들이 되게 자주 "It's my First Amendment Right!"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고 실제로도 엄청 중요하게들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이런 인상은 나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LL.M 친구들도 처음 미국에 와서 본인 나라와 미국을 비교하면서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너무 중요해서 아예 대중문화가 되었다'고들 했다. 실제로 내가 다닌 로스쿨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세미나도 많이 하고, 아예 First Amendment Rights라는 헌법 과목도 따로 개설되어 있고.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비판을 안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마인드 차이는 전국민적인 정서 차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미국은 개인주의라고들 하잖아요? 진짜 그런 것 같다. 로스쿨에서 Jeannie Suk Gerson 석지영 교수님과 Zoom으로 집단 면담을 하면서 'COVID 19의 시대에 어떻게 잘 살고들 있냐'는 주제로 얘기하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K-방역이 잘 되고 있던 때라 내가 자랑스러워하면서 '우리나라에선 확진자 동선 체크하고 접촉한 사람은 각자 알아서 자가격리한다'고 말했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아시아에서는 좀더 집단주의적인 문화가 있어서 확인자 동선 체크도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좀 충격받았다. 난 K-방역이 자랑스럽고 다들 마스크 알아서 쓰고 다니고 확진자 동선체크 너무 잘 되고 있고 다들 알아서 자가격리하고 우리나라 시민의식 진짜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시민의식이 판데믹 때 특히 잘 발현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단의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각 나라마다 시민의식의 성격이나 드러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시민의식이 높은 나라, 낮은 나라 이렇게 일도양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독 감염병의 시대, 그러니까 집단적인 질서와 공동체주의적인 마인드가 특히 중요해진 시대에는, 개인주의적인 국민의식보다 공동체적인 국민의식이 빛을 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미국은 개인주의 때문에 코로나가 안잡힌다는 연구결과도 있네예.



이제야 헌법의 정의를 알게 되다니...


헌법의 정의가 국민들의 전체 동의로 만든 한 나라의 기본규범이고 그 나라의 정체성이 담긴 정치적 합의의 산물이라면, 올해 일련의 간접 경험 덕분에 생각하게 됐다: 헌법이 정말 일상생활에서 국민들의 마인드 속에서 살아있고, 반대로 그 헌법이 국민들의 마인드를 지배하는구나, 헌법은 법이기는 하지만 진짜 정치적이구나, 학생 때 외웠던 그 헌법의 정의가 진짜 맞았구나?!


두 나라의 법 감정이 다르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헌법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면, 형사소송법에서는 체포와 경찰력이다. 형사소송법 상의 법 감정에 대해서는 미국 경찰이 무서운 이유(1)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