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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SN 변 호 사 님 Dec 26. 2020

절대 이길 수 없는 소송에서 이기는 방법

로펌 변호사가 리뷰하는 드라마, '하이에나'

전편 ≪노예계약에 갇혀버린 천재 아티스트≫에서 계속.



고이만이 소를 제기해서 송&김이 피고 매니지먼트 사를 대리하게 됐음.


고이만과 정금자 (원고) vs. 어머니, 매니지먼트 사, 윤희재 (피고) 구도.


윤희재는 상대가 정금자인 걸 보고 승부욕이 불타오름 ㅋㅋㅋ


송&김의 엘리트 변호사 둘이서 대책 회의를 해보지만,


전편에서 말했듯이 이길 방도가 없음. 전속계약은 무효로 판결될 확률이 99%



고이만이 매니지먼트 사와 체결한 전속계약은 너무 불공정하고 비인격적이라서 소송에서 전부 무효로 판결될 가능성이 크다. 전속계약이 무효가 되면, 매니지먼트 사는 고이만을 더 이상 붙잡아둘 수 없게 된다. 고이만처럼 잘 나가는 스타를 놓치는 건 회사 입장에서 큰 손실이다. (YG가 GD 내보내는 거랑 같음)


회사 입장에서는, 예를 들어 (1) 아티스트에게 정산을 더 해준다든가, 매니지먼트 재량을 양보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계약조건을 완화했을 때 입을 손실과, (2) 기존의 계약을 밀어부치는 대신 소송에서 졌을 때 입을 손실을 비교해서, 덜 손실을 입는 편을 택하게 된다. 완전히 비즈니스적인 판단. 윤희재는 전자(1)를 택하겠죠?



소송에서 져서 고이만을 놓치느니, 조금 계약서를 바꾸는 걸로 합의를 보는 게 (매니지먼트 사 입장에선) 나으니까.



윤희재처럼 손익을 따져 의도적으로 합의로 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손익을 따져 일부러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점포를 임차해서 장사를 하는데, 이미 임대차 계약이 끝나서 점포를 비워주어야 함에도 장사가 너무 잘 돼서 그 점포를 놓고 싶지 않은 경우. 건물주가 퇴거소송을 제기해도, 임차인 입장에서는 최대한 소송을 오래 끌어서 그 기간 동안은 장사를 계속 하겠다는 심산이다.


어차피 퇴거소송은 제기 됐고, 임대차 계약은 이미 끝났으니 소송에서 질 것은 뻔하고, 하지만 손해배상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점포 자리에서 장사하는 게 더 돈이 되므로 장사를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서, 변호사에게 "시간만 최대한 오래 끌어달라" 요구하면서 기꺼이 소송에 응하는 경우이다.


사람들은 준법과 위법의 갈림길에서 무조건 준법의 길만 택하는 게 아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법을 지켰을 때 얻을 이익 VS. 법을 안지켰을 때 얻을 이익 중에 더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할 뿐이다. 감방에서 몇년 살더라도 사기 쳐서 몇 십억 챙기는 게 낫다는 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잘 지키게 하려면, '법을 지켰을 때 보는 손해'는 없게, '법을 어겨서 보는 손해'는 크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기를 쳤다면 감방은 물론 범죄수익도 모조리 빼앗아야 한다. 그래야 전두환 같은 사람이 또 나오지 않는다(법을 어겨도 천 억 범죄수익을 킵할 수 있다면 누가 법을 지키겠어요)



그럼 윤희재는 어떻게 합의를 한다는 걸까? 고이만의 어머니와 회의하는 중.


계약서를 못 바꾸겠다는 대표이사님. '월급 못 올려줘!!'


'대표이사님, 정신 차리세요. 고이만이 이미 소송을 제기했어요.'


'소송에서 지면 YG가 GD 놓치는 거랑 똑같다는 걸 아셔야죠.'


'연애 금지 정도는 좀 풀어주십시다, 예?'



이러고 있는 한편, 어머니랑 사이도 안 좋아지고 어머니가 공연 다 취소 시켜서 연주도 못하게 된 고이만은...


두문불출 TV만 보면서 우울해하고 있음.


고이만이 걱정돼서 찾아옴


일단 커튼부터 열어 젖히고, 정신 차리라고 함.


엄마가 전화도 안 받고 (엄마에게 정서적으로 굉장히 의존하고 있죠~)


소송하는 걸 매우 힘들어하고 있음.



변호사를 찾아온 의뢰인들은, 대화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소송할 각오까지 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와 원수가 된다는 건 굉장히 마음이 힘든 일이다. 소송 하기 전에도 힘든데, 1년 2년 소송이 길어지면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 게다가 가족 간의 소송이면 뭐 스트레스는 극심하다. 


그래서 의뢰인들은 변호사에게 굉장히 할 말이 많다.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마음이 힘들기도 해서, 앞에 앉아 있는 변호사에게 몇 시간이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어 한다. 내가 저년차였을 때는 나를 붙잡고 하소연 하는 의뢰인이 좀 짜증 났다. 나도 너무 바쁘고 힘든데 내가 심리상담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정금자도 의뢰인이 힘들어 하는 걸 알고 있음.


하지만 정금자 스스로도 학대 받고 자란 경험이 있어서, 꼭 고이만을 해방시켜 주고 싶어 함.



이런 내 태도를 한 순간에 바꾸게 된 사건이 있었다. 평소에 존경하던 파트너 변호사님과 의뢰인과 회의를 하는데, 의뢰인이 회의가 끝나고도 하소연을 한 시간 가까이 하는 거다. 파트너 변호사님이 공감을 하면서 끝까지 듣고 계셔서, 나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에 따로 여쭤봤다.


"변호사님, 의뢰인이 불필요한 얘기도 많이 했는데 왜 다 듣고 계셨어요?"


그분 말씀인즉슨, 의뢰인들은 맺힌 게 많아서 변호사에게 계속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데, 한번 잘 들어주면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좀 누그러져서 길게 얘기 안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그 말씀 듣고 더욱 존경하게 됐다. 그때부터 나도 의뢰인의 하소연은 되도록 잘 들어드리게 됐다.



뼈 떄리는 팩폭 뒤에 따뜻한 응원의 말.


'어흐흑, 변호사님 ㅜㅜ' (고이만은 제대로 성장통을 겪고 있음...고이만 화이팅!! 힘내!!)



정말로 한번 시간을 내서 하소연을 들어드리면, 그 다음부터는 의뢰인이 더 이상 하소연을 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다 털어버려서 그런 건지 몰라도. 그리고 더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연차가 높아지면서 의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말을 건넬 여유도 생겼다. '잘 하고 계십니다,' '자료를 잘 정리해주셔서 제가 너무 좋습니다,' '지금 많이 힘드시겠지만 끝까지 힘 내세요!' 같은 말. 의외로 의뢰인들은 이런 말을 굉장히 반기신다. 마음이 많이 힘든데 자기 편이 있다는 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일 잘하는 변호사란 의뢰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덕목도 갖춘 사람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정금자가 그러고 있다. 한껏 취약해진 의뢰인에게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응원까지 하는.



그런데 정금자 위에 나는 윤희재가 있었으니...


윤희재는 고이만을 찾아 게이바에 직접 왔다.


오랜 팬이기 때문에 고이만이 게이인 사실도, 어느 바를 가는지도 알고 있었음.


명함을 건네며, 자신이 상대편 대리인임을 밝히는 윤희재. (본인을 팬이라고 소개하면서 미리 경계를 풀어놓고)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씬 때문에 '하이에나' 리뷰를 시작하게 됐다. 윤희재가 변호사 윤리와 변호사법을 은밀하게 어겨가면서 상대편의 마음을 얻는 장면. 너무 재밌다. '하이에나'는 매 에피소드가 변호사 윤리에 관한 매우 훌륭한 교과서다. 나중에 학교에서 법조윤리를 가르치게 된다면 이 드라마를 꼭 교재로 쓸 거다.


변호사는 상대방 당사자에게 변호사가 있는 경우, 그 상대 변호사를 만나 협상 해야지 상대 변호사 없이 직접 상대방 당사자를 만나서는 안된다 (변호사 윤리장전 제45조). 변호사 아닌 당사자는 법 지식이 없기 때문에 협상력이 미약하다. 없는 협상력을 보충하려고 돈 주고 내 변호사를 선임한 건데, 상대편 변호사가 내 변호사를 빼고 나와 직접 협상한다면 내가 변호사를 선임한 이유가 무색해진다. 무색해질 뿐 아니라 쌍방의 협상력이 비대칭적이므로 대화 자체가 불공평해진다.  



변호사 윤리장전 제45조



그런데 지금 윤희재는 어떻게 하고 있다? 정금자가 변호사로 선임된 걸 뻔히 알면서, 정금자 몰래 고이만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와 직접 접촉하고 있다. 이건 변호사협회 징계감이다. 변호사협회는 윤희재 같이 상대방 변호사 몰래 상대방 당사자를 접촉한 변호사에게 과태료 200만 원의 징계를 했다.



소송하면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설명함. 이건 사실이다. 소송하면 1심만 1년 잡아야 한다.


고이만이 소송하느라 이리저리 정신 빼앗기고 스트레스 받아서 연주 망칠 거라고 회유함.


윤희재는, 연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이만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음.


고이만은 벌써 윤희재에게 넘어간 것 같죠? (안돼 고이만! 정신차려!)



바로 이래서 변호사가 상대편 당사자를 직접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변호사에게 불필요하게 큰 권위를 부여한다. 내 변호사가 아니라 상대방 변호사이므로, 내 이익에 정면으로 반해서 내 원수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인데도, 단지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내 적수를 믿고 따른다.


일단 윤희재가 저렇게 고이만의 변호사 몰래 고이만에게 접근해서 마음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변호사 윤리 위반이지만, 만약 고이만이 먼저 윤희재를 찾아왔다 하더라도 윤희재는 만남을 거부해야 한다. 내가 윤희재라면 '당신의 변호사와 상의하세요,' 라든가 '제 말을 믿으시면 안됩니다'라고 반드시 경고할 거다.



합의서를 꺼내는 윤희재. 그럼 그렇지~ 합의가 목적이지.


월 500으로 만족하겠다는 GD. 결국 어머니는 돈 아끼게 됐네요.


새 계약서에는 연애금지 조항이 삭제됐다. 그렇다, 원래 계약서에 연애금지 조항이 있었던 이유는 고이만이 게이였기 때문... ㅜㅜ


고이만에게 연주 다음으로 중요한 건 사랑할 자유였음.


커밍아웃 못한 고이만에게 있는 그대로 살아가시면 된다면서 마음을 헤아려주면, 누가 안넘어가겠냐고요.


찐 감동 받은 고이만.


상대방 변호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 하고 있는 아이러니...



여기까지 보고 윤희재에게 감탄했다, 너무 일을 잘 해서. (하지만 변호사 윤리 위반은 위반임) 윤희재는 팬으로서 고이만의 사생활까지 알고 있던 점을 이용해서, 고이만의 니즈 (needs) 를 제대로 캐치했다. 그걸 바탕으로 어머니를 설득하고 고이만까지 설득해냈다. 고이만에게는 연주와 연애를, 어머니는 돈과 고이만을.


어머니는 고이만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고도 약간의 자유만 줌으로써 거위를 계속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월급도 안 올려줘도 됨), 고이만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도 원하던 만큼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어머니와 고이만에게 이 합의는 완벽한 윈윈이다.



윤희재는 떠나고, 고이만은 감격해서 바에 함께 있던 애인에게 안겨 운다. 이제야 마음 졸이지 않고 연애할 수 있게 됐다.



그럼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요? 소송에서 이기고, 그 과정을 통해 고이만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정금자 변호사는?


잘 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음. (윤희재의 탁월한 협상능력이 정금자에게는 "감언이설"과 "속임"이 됨 ㅋㅋ)


정금자는 소송으로써, 고이만이 폭력적인 어머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길 바라고 있었음.


하지만 고이만은 이미 마음을 굳혔음.



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데 별 수 있나.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은 의뢰인이지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금자는 고이만이 하라는 대로 소를 취하해야 한다. 소를 제기할지 말지, 소를 취하할지 말지, 합의를 할지 말지, 합의조건은 어떻게 할지, 모두 의뢰인이 결정한다. 변호사는 옆에서 조언하고 의사결정을 보조할 뿐이다.



충격을 받은 정금자가 윤희재를 직접 찾아갔음.


넌 고이만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모르고 있어!!


힘들더라도 성장통을 겪으면서 성장하게 했어야 한다고!



여기선 정금자가 정의감에 불 탄 나머지 좀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금자는 변호사로서 사명을 다했다. '소송을 하면 이길 것이고, 그 기간 동안 힘들 것이고, 하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고 충분히 고이만에게 설명했다. 그거면 됐다. 그랬는데도 의뢰인이 합의하겠다면, 변호사는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변호사가 뭐가 옳다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이만이라는 사람을 어머니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구출해내는 게 옳더라도, 그런 구출 작업은 변호사가 아니라 후견인이나 복지사가 하는 게 맞다. 변호사의 업무 자체가 의뢰인을 보조하는 거지, 의뢰인을 대신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하이에나' 최고의 명대사



이건 '하이에나' 전 에피소드를 통틀어 내가 꼽는 최고의 명대사다. " 고이만이 원하는   거고,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거지" 이 대사는 다 이긴 소송에서 정금자가 진 이유, 다 진 소송에서 윤희재가 이긴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정금자는 소송을 통해 고이만을 해방시켜주고 싶었지만 그건 정금자의 희망일 뿐, 의뢰인인 고이만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고이만은 소송을 견딜 깜냥이 안됐다. 윤희재는 고이만에게 옳은 길이 뭔지는 상관 안하고 단지 고이만의 니즈만을 충족시켜 줬다. 고이만은 그걸로 만족했고, 윤희재는 고이만의 마음을 샀다.  


윤희재는 정금자가 학대 받고 자랐다는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정금자가 소송으로 이기려는 이유를 단지 성공보수를 받고 싶어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걸(돈) 본 거지."라고 한 것.


그래서 윤희재는 크게 이길 수 있었다. 이 싸움에서 고이만과 어머니, 윤희재는 승리자로, 정금자는 패배자로 남게 됐다. 이 명대사는, 변호사가 어떻게 해야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결 같은 대사이다. (물론 윤희재가 변호사 윤리와 변호사법 위반한 건 잘못한 것임.)


바로 이 에피소드 때문에 '하이에나' 리뷰를 시작했고, 바로 저 명대사 때문에 본 에피소드가 '하이에나' 전편 중에 최고의 에피소드가 됐다. 리뷰를 하면 할 수록 이 드라마가 로스쿨 법조윤리 수업에서 훌륭한 영상 교과서가 될 거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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