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2024년 12월이 시작되면서 딸아이는 여자 배드민턴부가 있는 신복초로 운동을 배우러 다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아이의 의사를 묻고 신복초로 전학을 갔다.
학교 일과 후 운동을 시작해서 저녁 7시가 되면 돌아오기를 매일 같이 했다.
다행히 힘들지만 재밌다는 말로 부모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재능이 보여 시킨 운동이 아니었기에 전학까지 보내면서 배드민턴 선수의 길로 보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항상 마음에 있었다.
1년이 지나고 2026년 1월 딸아이가 밀양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다른 학교와 함께 진행되는 전지훈련에서 처음 보는 또래 아이들과 연습 경기도 치러졌다.
부모 참관이 가능하다는 말에 차량 픽업을 핑계 삼아 딸아이를 보러 갔다.
하필.. 내가 마주한 경기의 내용은 처참했다.
상대 아이의 실력은 딸아이 보다 훨씬 구력이 느껴졌다.
힘이 약한 딸아이의 공을 예측하고 편안한 플레이를 하는 상대 선수와 그 공을 힘겹게 쫓아다니는 딸아이를 보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누가 나를 때린 것도 아니고, 나를 욕하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먹먹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처음 느껴 보는 아픔으로 가슴이 가득했다.
자식 대신 아플 수 있으면 본인이 아프고 싶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대신 코트 위에서 패배의 아픔을 대신하고 싶었다.
상대의 플레이에 압도되어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아이는 차를 타자마자 ’엄마 아빠 왜 왔어‘라고 짜증을 냈다.
경기장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상관없이 딸아이의 태도에 화가 나서 같이 쏘아붙였다.
참 못난 어미라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경기에서 져서 속상하고, 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자존심도 상했을 텐데, 그런 아이에게 태도 운운하며 쏘아붙이다니….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았다. 미숙한 엄마 같았다.
이런저런 이유의 아픔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이런 아픔들을 어떻게 잘 이겨내야 하는가에 대한 숙제가 생겼다.
특히 처음 느껴보는 딸아이의 부족한 모습에서 느껴졌던 아픔을 다루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딸아이는 성장 중이다.
성장의 과정에서 수없이 경험해야 할 실패에 내가 먼저 좌절하지 말고
실패를 딛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내가 더 단단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