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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Apr 07. 2019

강 동쪽의 기담

나가이 가후, 추락천사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일본은 본격적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다. 일본은 근대화를, 서구 열강이 이룬 물질 문명을 따라잡아 부국강병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목적의식적으로 국가가 주도해 필요한 부분만 압축적으로 수용했다. 이 과정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안그래도 전통 가치의 해체와 새로운 가치의 수용이 가져온 혼란이 가득한데,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국가의 폭력마저 난무하자 이를 지켜본 몇몇 사람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만다. 이 책의 저자 나가이 가후가 그랬다.


 이 책에 수록된 <불꽃>이라는 단편에서 가후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려 준다. 일본은 일차 세계 대전에 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의 요구로 참전했다.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도쿄에서 전승기념일을 맞아 불꽃축제가 열린다. 화자는 세상과 동떨어진 방관자의 입장으로, 1890년 대일본제국 헌법발포 축하제부터 근대화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축제와 사건을 돌아본다. 그의 세계관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회상 속에 나온다. 화자는 1911년 출근하다가 죄수들을 실은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1910년에 사회주의자 몇 명이 천황 암살을 계획했다 발각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수많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가 조작으로 검거되어 사형을 당한 ‘대역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이들이 이송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이 일화에 대해 나가이 가후는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여러 세상 사건을 보고 들었지만, 이때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 나는 문학가인 이상 이런 사상 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되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정의를 외치고 국외로 망명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세상의 다른 문학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문학가라는 사실에 스스로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후 나는 내 예술의 품위를 에도 시대의 희작자(통속소설가)들의 작품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담뱃갑을 차고 우키요에를 모으고 샤미센을 켜기 시작했다. 나는 에도 시대 말의 희작자들과 우키요에 화가들이 우라가에 서양 함선이 출현하든 사쿠라다몬에서 다이로가 암살을 당하든 그런 일은 서민이 관여할 것이 아니라고, 이러쿵저러쿵 아뢰는 것이 도리어 황송한 일이라고 넘기고 음서를 쓰고 춘화나 그리던 그 순간의 속마음을 어이없어하기보다 오히려 존경하려 마음먹은 것이다.”


 가후는 원래 프랑스에서 산 적도 있고 에밀 졸라를 추종했다. 그가 이전에 쓴 소설은 졸라 풍의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졸라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 하층에 있는 통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나는 가후가 자신을 ‘추락천사’로 여긴다고 느꼈다. 루시퍼가 신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천사들은 선과 악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천사들은 인간 세상으로 추방됐다. 이들을 ‘Fallen, 추락천사’라고 부른다. 그는 애초에 하늘에서 추락한 ‘천사’처럼 품위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층 통속의 세계로 내려가도 원래 자아는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지켜보기만 할뿐 어디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자신에게 있어 타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바라보는 시선만 남는다. 그의 시선과 감각은 오로지 자신이 관심을 갖는 쪽으로만 열려있다. 그가 원래 ‘천사’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감각을 거부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아도 괜찮은 것이다.

 <강 동쪽의 기담>은 나가이 가후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이런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다. 첫 문장이 “나는 활동사진을 보러 간 적이 거의 없다.” 작중 화자는 활동사진(영화)도 보지 않고 라디오 소리도 피할만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감각과 정보를 차단한다. 그가 탐닉하는 대상은 창녀, 고서적, 옛날 느낌이 나는 거리다. 그가 고고하게 살 수 없게 만들었던 계기가 근대화를 밀어붙이는 일본 정부의 폭력이었다. 그는 근대화 이전 모습에 집착한다. 자신이 수치심을 느끼게 했던 정치적 사건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더러운 도랑 옆 골목에서 뒷골목 작부 오유키를 만난다. 그녀에게 화자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마음대로 생각하게 둔다. 이와 반대로 그는 그녀를 관찰하고 과거 이야기도 들으며 그녀에 대해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녀가 뮤즈로 작용해 잘 풀리지 않던 소설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절대 동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래쪽 사람일 뿐이다. 그저 성욕을 풀고,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실마리를 얻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시선은 곧 권력이다”라는 말은 미셸 푸코가 근대 초기 원형감옥을 통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밝히면서 유명해졌다. 작중 화자와 오유키의 관계는 간수와 죄수의 관계 같다. 그는 오유키를 대상으로만 보고 자신의 시선에만 집중한다. 한편, 주체의 시선이 객체에 닿으면 객체가 주체를 바라보는 ‘응시’도 따라나온다. 그런데 그녀가 화자를 바라보는 ‘응시’는 그에게 다다르지 못한다. 화자는 그녀에게 거짓 자아를 내세워 응시를 회피했다. 원형감옥에서 죄수가 간수를 볼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자는 선입견을 앞세워 그녀의 미래가 어떨거라고 추정만 하고는 떠나버렸다. 그는 ‘추락천사’로서 이 세상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개입하지 않고, 영향받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어떤 문학적 진실이 나타날 수 있을까? 세상을 관조하는 태도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은 철학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관조하는 태도를 지고의 경지로 여기기도 하지 않았던가?



 삶과 예술을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진실을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주체의 (일방적인) 시선을 넘어서야 한다. 이 시선에서는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입자가 물질과 파동의 두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중성을 증명한 이중슬릿 실험을 떠올려보자. 누구도 지켜보지 않은 채, 입자를 이중 슬릿에 통과시키면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 두 슬릿을 모두 동시에 통과하는 파동의 흔적이 남는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 과정을 ‘관측’하면 입자는 알갱이처럼 하나의 슬릿만 통과한다. 어디를 통과했는지 위치가 확정된다는 뜻이다. 주체의 시선이란, 이 실험에서 관측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삶과 예술에서 진리는 확정된 위치에 있지 않다. 실험을 관측하지 않았을 때 생겨난 파동의 흔적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주체의 시선이란 그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지나지 않는 셈이다. 우리는 파동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횡단하여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본질을 알고 진리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추락천사’가 인간 세상에 존재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는 동떨어진 주체가 아니어야 한다. 애초에 그가 원했던 바가 세상을 관조하는 상태라면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로서 세상을 부유해야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글쓰기를 보여준 작품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른다. 이 두 작품에서도 인물 혹은 화자는 근대화에 상처입고 소설가를 지향한다. 그러나 가후와 달리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부유하는 객체로서, 세계의 시선을 받는다. 이들은 그 시선에 반응해 ‘응시’하며 정해진 길이 아닌 우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그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들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얻고 본질을 탐구한다.


 그런데 왜 나가이 가후의 작품이 인기 있으며 추앙을 받을까? 가후의 글은 과거에 대해 추억어린 향수를 느끼게 한다. 문장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매끈하기 때문에 읽기 편하다. 그러면서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관조적인 태도가 때론 멋지게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는 삶과 세상이 내포한 진실과 본질이 없다. 이것들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려움이 없이, 그의 말대로 ‘게다를 신고 어슬렁’거리는 듯한 작품의 분위기가 친근감과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회색 분자에게 안도감을 준다. 자신의 비겁함을 알고 부끄러워 세상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이 가후의 글을 읽으면 위안을 받지 않겠는가. 나도 그랬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의 비겁함을 변명해도 괜찮다는 달콤한 위로를 얻었다. 한편, 가후는 자신과 동시대의 많은 사회주의자가 나중에 변절해 군국주의자가 되었을 때, 유흥에 몰두했으므로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비겁한 도피가 변절을 예방한 셈이다. 변절자보단 비겁자가 더 낫지 않겠는가? 변절의 오명을 지닌 나는 가후가 부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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