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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Jul 01. 2019

화씨451

책이 필요한 이유

<화씨 451>은 독서가 반사회적인 일이라 책을 가지고 있거나 읽으면 범죄가 되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화씨 451은 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로 섭씨 233도에 해당한다. 이 세상에는 fireman이 있는데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수가 아니라 책을 불태우는 ‘방화수’다. 그들의 모자와 작업복에 숫자 451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소설의 주인공 가이 몬태그는 방화수로, 어느 날 퇴근길에 신비한 소녀 클라리세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녀를 통해 그는 이전과 달리 자연을 관찰하는 기쁨과 이야기의 즐거움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몬태그는 책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책과 함께 불타기를 선택한 노파를 본 후,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한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살던 주인공은 어떤 계기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을까? 클라리세는 그에게 “아저씬 행복하세요?”라고 물었다. 몬태그는 이 질문에 행복하다고 혼잣말을 하지만 웃음을 멈춘다. 그리고 진지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나는 행복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관념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날,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누구나 공감하는 ‘행복’이 있다고 깨달았다. 지인에게 심각한 고민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내가 “행복하겠네요”라고 말했다. 


 심각한 고민이나 어려운 문제가 풀렸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 아닌가! 이때 행복하지 않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때 행복은 상태의 변화로부터 온다. 갈등과 고민과 문제가 행복의 원천인 셈이다. 물론 행복을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없는 고요하고 안정된 삶이 지속되는 상태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삶이 가능할까? 행복이란,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마음가짐에 있다고 생각한다. 빛과 그림자, 뜨거움과 차가움처럼 행복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차이에서 온다. 그렇다면 갈등을 해소하는게 아니라 없애버리는 사회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일 것이다. 몬태그가 살아가는 곳이 그렇다.


 소설에서 책을 금기로 여겨 불태우기 시작한 주체는 권력이 아니라 대중이었다.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권력이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강제한 일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영상 매체가 발전하면서 대중은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인 내용을 찾았다. 시간을 들여 사유하는 일은 점점 사라져갔다. 고전은 점점 축약되어 간단한 책자 안에 줄거리만 담겼다. 이제 매체는 일회적인 자극과 단순한 쾌락을 끊임없이 공급한다. 깊이 있는 사고가 없어지면서 갈등은 악이 되고 검열이 되었다. 방화소 소장 비티가 몬태그에게 한 말을 보자.


 “유색인들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싫어하지. 태워 버려. 백인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싫어하고. 그것도 태워 버려. 누군가가 담배와 폐암과의 관련에 대한 책을 썼다면? 담배 장사꾼들 분통이 터지겠지? 그럼 태워 버려. 안정과 평화.”


 인간 사회에서 갈등은 제거해야만 하는 죄악이 아니다. 인간성의 핵심 요소는 다양성이다. 한 사람 안에서도 상충되는 이해가 있다. 우리는 갈등 이면에 숨겨진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문화를 꽃피우고 내적으로 충만함을 얻는다. 갈등을 푸는 데에는 한가지 관점이 아니라 여러 시점에서 복합적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하며 지난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유가 사라지고 말초적, 일회적 자극만 좇는 사회에서는 갈등을 해소하는 대신 아예 소지를 없애버리는게 편하다. 그래서 대중들은 독재적 권력이나 거대 자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책을 없애버렸다. 


 이 작품은 종이책의 위대함을 찬미하지 않는다. 대신 사유하는 능력과 실천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낸다. 방화소 소장 비티는 고전에 해당하는 여러 책에서 나온 서로 상충하는 경구들을 끝없이 인용하며 책이 인생에서 하등 쓸모없음을 말한다. 맞다. 한 책에서도 뜻이 반대되는 구절이 나온다. 한 저자가 이 책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가, 다른 책에서는 반대되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뿐인가? 온갖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다면서 내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책이 소중한 까닭은 무엇인가?


 상충하는 논리와 모순적인 대립이 갈등의 본질이다. 인간의 말은 똑같은 말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맥락을 파악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관계를 높이고 사회적 본능을 충족한다. 이야기를 통해 타인에게 공감한다. 인간은 이 힘으로 갈등을 해소하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행복을 얻는다. 이야기하기는 사회를 구성하는 근원이다. 책이 곧 이야기다.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 사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화씨 451>은 우리가 책을 멀리할 때, 사유하는 능력과 이야기하는 힘을 잃었을 때, 우리를 맞이할 세상이 얼마나 섬뜩한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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