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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Jul 06. 2019

팩트풀니스

사실충실성, 세상은 더 나빠졌을까?

 <팩트풀니스>는 ‘사실충실성’이라는 뜻이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이 책을 통해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아주 절절하게 충고한다. ‘절절하게’ 충고할 정도라면 사람들이 실제 사실과 다르게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일테다. 그럼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세상과 실제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 저자가 책 앞머리에 제시한 문제 중에 몇 개를 소개한다.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A: 20%           B: 40%           C: 60%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을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을 몇 퍼센트일까?


 A: 20%           B: 50%           C: 80%



 책에 이런 종류의 문제 13개가 나왔다. 저자가 이 문제들을 전 세계 지식인, 관료, 활동가 들에게 물어봤더니 충격적인 정답률이 나왔단다. 답 셋 중에 하나를 고르는 문제이니 침팬지가 아무거나 선택해도 각 문제의 정답률은 33%가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10% 정도만 정답을 맞췄고 그것도 정답과 가장 거리가 먼 대답을 했단다. 위에 소개한 문제의 정답은 모두 C이다. 


 이 질문들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는가? 저소득 국가에서도 절반이 넘는 여성이 초등교육을 받으며, 극빈층 비율은 꾸준히 감소했다. 그렇다. 생각보다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한스 로슬링은 의사이자 보건 전문가로 아프리카 오지를 비롯한 빈곤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펼쳤다. 그는 현장 경험과 통계를 기반으로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이 보여주는 이미지대로 여전히 수십 년 전의 상황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책은 왜 사람들이 세상의 실제 모습을 모르거나 외면하는지 원인을 찾고 처방으로 ‘팩트풀니스’, 즉 ‘사실충실성’을 제시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세상을 잘못 바라보는 열 가지 본능을 제시한다. 세상을 단순히 흑과 백으로만 구분하는 ‘간극 본능’, 세상이 점점 나빠진다고 오해하는 ‘부정 본능’, 공포를 주는 요소를 과대평가하는 ‘공포 본능’, 선택적 일반화와 고정관념이 합작한 ‘일반화 본능’, 한 가지 관점으로만 세상을 볼 때 빠지기 쉬운 ‘단일 관점 본능’, 시스템에 원인이 있는데도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지우고 만족하는 ‘비난 본능’,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다급함 본능’ 등이다. 


 저자가 소개한 본능은 원래 인간이 진화하면서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가지게 된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고 복잡한 사회에서 살게 되면서 지금 현실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인간이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데에는 과거의 경험을 축적해 이로부터 지혜를 얻어 현실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자기를 반성하면서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에 대한 인식이 틀렸다면 이를 교정해야 한다. 


 한스 로슬링은 한 예를 들었다. 자신이 유럽의 기업가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꺼려하더란다. 아프리카 대륙도 분명히 과거와 달리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은 현저히 줄었다. 그럼에도 기업가들은 아프리카 전체가 내전에 휩싸인 소말리아나 과거 참혹한 기아에 시달렸던 에티오피아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대륙에 투자를 안 하더란다. 한국인은 동남아시아의 발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가 기업 투자, 여행 등으로 친숙하기 때문에 그들이 최근 얼마나 경제적으로 성장했는지 대체로 알고 있다. 아프리카도 동남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이전보다 훨씬 좋은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가 변화한만큼 다른 지역도 변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요즘 ‘팩트(사실)’는 한국에서도 중요한 화두이다. 정치인이나 관료가 어떤 주장을 내세울 때 ‘팩트 체크’가 반드시 따른다.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대립도 여전하다. 왜 그럴까?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사실’은 하나가 아니게 되었다. 길고 복잡한 현실 문제에서 하나의 ‘사실’이 문제의 본질이 아닐 수 있다. 문제를 둘러싼 여러 맥락을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실’을 뽑아내느냐에 따라 본질과 맥락이 달라진다. 


 예전에 읽었던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떠올렸다. 이 책 <팩트풀니스>의 자자와 같은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히말라야 산맥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 ‘라다크’가 산업화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쓴 책이다. 산업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게 되었지만 공동체적 삶이 무너지면서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물론 한스 로슬링은 여전히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절대 외면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의 세계 시스템이 괜찮다는 의미다.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 경제 체제가 옳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현재 세계 체제에 의문을 품고 있는데 이를 옹호하는 듯한 내용을 읽으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이 알려주는 내용에 실수를 제외하고 거짓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관점에서는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 나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숫자가 보여주는 경제성장이나 폭력에 의한 사망자의 감소가 세상이 좋아진다는 지표라면, 이와 다른 기준도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 생각에는, 세상은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일이 바로 ‘간극 본능’ 아닐까? 세상은 변화할 뿐이다. 이 변화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세상이 좋아졌다거나 혹은 나빠졌다고 평가하는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 저자의 말대로 ‘여러 관점에서’ 사실에 충실하게 세상을 인식하는 일이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데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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