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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Jan 06. 2020

도둑맞은 손

인체와 인체유래물은 인격인가? 물건인가?

[공상 재판]


 어떤 사람이 정원에서 전기톱을 사용해 나무를 자르려다 실수로 자신의 손을 잘랐다. 그는 고통과 충격으로 기절해버렸다. 이때 손이 잘린 사람과 평소에 주차 및 쓰레기 배출 문제로 자주 다투어 원수처럼 지내던 이웃이 사고를 목격했다. 이웃은 그가 기절한 틈에 잘린 손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가 벽난로에 넣어 태워버렸다. 손이 잘린 사람은 외과 수술로 다시 손을 접합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장애인이 될 것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웃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1. 피해자는 손이 잘렸는데 이웃 때문에 다시 접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신체의 일부가 영구적으로 훼손된 사건이기 때문에 중상해죄로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위 사건에서 중상해죄를 적용하려면 손을 훔치는 일이 곧 손을 훼손하거나 자르는 행위와 같다는 논리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손은 잘리기 전에도, 잘린 후에도 같은 법적 지위를 지녀야 한다. 손이 잘리기 전에도, 잘린 후에도 동일한 사람의 신체에 속한다면 잘려 나간 손을 다른 이가 가져가는 것은 곧 신체 훼손을 의미한다. 이런 논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가 더 필요하다. 


 2. 잘려나간 손은 더이상 한 사람의 몸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잘려나간 순간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경우에 이웃은 절도죄를 저지른 셈이다. 그러니 절도죄로 처벌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손이 몸에 붙어 있을 때와 잘렸을 때의 법적 지위가 달라진다. 인격으로서 보호받는 신체 일부가 통합성을 잃는 순간 물건이 되는 셈이다. 


 3. 무죄 방면이다.


 만약 내가 손이 잘린 사람 입장이라면 1번으로 처벌해야 그나마 수긍할 수 있지 싶다. 내 신체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으므로 여기에 해당하는 죄인 중상해죄를 적용해야 한다. 무죄는 말도 안되고 절도죄는 내 억울함을 감당하기에 부족하다. 이 책이 쓰여진 프랑스에서는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 저자에 따르면, 놀랍게도 프랑스 법의 독트린(법학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견해)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무죄 방면을 내려야 한다!  


 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프랑스 법학자 장-피에르 보가 프랑스 (민)법이 내포한 중대한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위의 공상 재판에서 왜 무죄가 나올까? 프랑스 법의 독트린은 “몸이 곧 인격”이라고 본다. 사람의 몸은 전체로서 인격과 동일시된다. 그러므로 몸에서 분리된 신체의 일부는 물건이 된다. 그런데 손은 원래 물건이 아니었는데,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동시에 물건이 되기 때문에, 손은 주인이 없는 물건(무주물無主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주물은 최초 점유자가 주인이다. 위 사건에서는 손이 잘린 사람이 기절해서 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했다. 손을 먼저 주운 이웃 사람이 최초 점유자로서 잘린 손의 주인이다. 그래서 이웃은 무죄다!!  


 어째서 이런 황당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걸까? 저자는 이런 결과가 “인간에게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는게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몸이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법의 독트린이라 그렇다. 1번에서 중상해 죄로 판결을 내리려면 몸이 법적으로 물건이어서 원래 몸의 주인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야 가능하다. 몸이 인격이라면 불가능하다. 인격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법적 권리와 행위의 주체다. 몸에서 분리된 손 또한 인격이라면 이런 논리도 가능하다. 막대한 빚을 진 후, 손을 잘라내고, 내 빚의 변제 의무는 내 인격인 잘린 손이 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공상 재판에 대해 생각하려면 인격소유가 무엇인지, 법이 이들 개념을 어떻게 다루는지 깊이 숙고해야 한다. 


  프랑스 법의 독트린이 내포하는, 몸이 물건이 아니라 인격이라는 사고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시작했다. 로마인들이 법적 주체로서 인격을 발명하는 동시에 몸을 검열하여 민법에서 추방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후 유럽의 법률가도 이런 로마법의 정신을 따랐기 때문에 무죄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터무니없는 법리가 프랑스에만 한정된 것이고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주제이지 않나? 그렇지 않다. 한국의 법체계에서 인간의 신체는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통합된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인체유래물은 물건이다. 프랑스와 차이점은 인체유래물의 소유권이 분리당한 사람에게 있다고 명시한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이 사건을 가지고 공상 재판을 한다면 2번에 가까운 판결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법률가가 아니라 추측만 할 뿐이다. 여하튼 누군가의 신체 일부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어도 절도죄만 성립한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이 가상의 사건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사람의 몸을 물건으로 인정해야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잘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놀랍고 충격적이다. 물건은 사고 파는 거래의 대상이며 단순한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과학이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이 유효하지 않다고 밝힌 이래, 사람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째서 우리의 몸을 물건으로 취급해야 우리의 존엄성이 더욱 보장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인격으로 보호하여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존재로 지키는게 맞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 몸의 일부가 분명하게 ‘상품’으로  거래된다. 장기 밀매, 정자와 난자의 매매, 성매매 등이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성행하고 있다. 또,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인체에서 유래한 세포도 활용 여부에 따라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이런 현실에서 몸이 어떤 법적 지위를 가져야 더 나은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우선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보자. 생소하지만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라 책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절취선 부분은 책의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했는데 너무 길어서 보기 힘들면 그 아래 요약만 보아도 좋다. 


[내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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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원래 인간의 몸이 물건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우선 시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몸은 시체가 된다. 우리는 시체를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시체는 물건이다. 앞에서 인체유래물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 잠깐 말했다. 손이 잘리기 전이나 후나 법적 지위가 (물건으로써) 같아야 중상해죄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 또한, 살아서나 죽어서나 같은 법적 지위를 가져야 일관성이 보장된다. 


 시체는 어떤 물건인가? 고대에 시체는 그냥 물건이 아니었다. 성스러운 물건이었다. 그리스 신화와 아테네 비극을 읽어 보면 죽은 자의 매장과 무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안티고네가 죽은 이유는 죽은 오라비의 몸을 수습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랬던 이유는 시체가 성스럽기 때문에 적절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시체가 있기 때문에 무덤은 성역으로 보호받는다. 만약 몸의 성스러움이 인격 때문이라면, 사람이 죽어서 인격이 사라지면 시체는 성스럽지 않을 것이다. 멀리 고대 유럽까지 갈 필요없이 우리 전통도 시체를 성스럽게 여겼다. 달리 말하면 시체가 성스러운 까닭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성인의 경우에도 그가 죽은 후 그의 시체는 성물이 된다. 성자의 시체가 인격이 아니라 물건이기 때문에 신도는 성물을 소유하거나 접촉하여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시체는 배설물처럼 산 사람의 안락과 건강을 위협하는 혐오스러운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9세기 보건학 문헌에서는 쓰레기, 배설물, 무덤을 동일한 항목에 넣었다. 또, 시체에서 나온 여러 물질은 암암리에 거래되었다. 인간의 지방은 하숙집의 불을 밝혔고, 시체는 의과대학에 들어가 해부되었다. 성스러움과 저속함이라는 시체의 양면성은 사제와 의사(장의사)가 나누어 담당했다. 왜 이렇게 했을까? 


 “몸에 대해 말하지 않기 위해서, 몸의 법적인 본성에 대해 발언할 필요가 없게 하기 위해서, 몸이라는 물건의 신성함은 사제에게, 그리고 저속함은 의사에게 맡긴 채, 법학자는 인격들, 즉 법적 창조물들로 이루어진 인류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528~534년 사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명하여 <로마법 대전>이 편찬된다. 여기서 법을 분류하는데, 우선 로마의 국가 체제와 관련된 공법이 있다. 그리고 사인(私人)들 사이의 일을 다루는 사법(私法)이 따로 존재했다. 사법은 다시 (살아 있는 존재들 전체와 관련된) 자연법, (인간 존재 전체에게 고유한) 만민법, 마지막으로 (로마 시민의 권리인) 민법으로 나누어졌다. 민법은 로마 시민의 지위, 이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계약과 관련한 의무, 그리고 이들이 물질적 재화와 맺는 관계를 다루었다. 공법은 국가 체제와 성스러운 것들, 사제, 그리고 행정관들과 관련이 있었다. 


 고대에 몸은 이중성을 가졌다. 숭고함, 신성함을 드러내는 몸이 있고 배설물과 관련해 저속한 몸이 있다. 시체와 같다. 로마의 법체계에서 성스러운 것들은 공법이 다룬다. 또, 위생, 식량과 관련한 부분은 행정관들의 역할이다. 이로서 몸이 가지는 성질은 민법이 아니라 공법에서 다루는 영역이 되었다. 이후로 몸은 민법에서 점점 사라지는데 근대에 이르러 ‘자유를 박탈하지만 신체형은 아닌 형벌’ 원칙이 확립되어 법의 탈육체화가 최종단계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법의 탈육체화가 필요했던 까닭이 있다. 


 “법의 탈육체화를 통해 비로소, 신체를 주술적으로 속박하는 관행들의 야만성이 법적 관계들에 대한 합리적 담론으로 대체된다.”


 저자는 고대 이전 시기에 신체를 주술적으로 속박하는 관행이 곧 ‘소유’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죗값을 치러야 하는 범죄자나, 빚을 진 사람이거나 모두, 몸이 물리적으로 속박된 사람과 비슷한 상태에 있도록 초자연적인 힘을 개입시켰다. 그는 유사-구속의 의례 행위, 즉 오블리가티오(Obligatio)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법적 의무(Obligation juridique)의 개념은 여기서 나왔다. 로마 공화국 시절에도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채권자의 노예가 되었다. 현대에도 국가에 벌금이나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구금될 수 있다. 고대의 법적 의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채무자의 신체이며, 또한 채무자의 약속을 대신하는 이 신체에 대한, 주술적인 기원을 가진 지배이다.”


 로마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이어지는 기간에 활약한 법학자나 행정가는 대체로 합리적, 실용적으로 사회 현실을 다루려고 했다. 인간과 관련된 성스러움은 이런 사고에 커다란 방해가 되었다. 로마의 민법은 세 항목으로 다시 분류된다. 


 인(人) : 권리주체

 물(物) : 권리객체

 소권(訴權) : 권리(소송할 권리)


  민법의 이런 조직방식은 몸에 대한 검열로 이루어졌고, 몸의 실체를 언급하지 않는 데로 나아갔다. 로마법에서 물건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물건”(유통물)이며, 다른 하나는 “상거래 바깥에 있는 물건”(비유통물)이다. 비유통물은 어떤 법적 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물건(공기 등)처럼 인간의 법과 관련된 종류가 있고, 신법과 관련되어 유통할 수 없는 물건이 있다. 신법과 관련된 일부가 성스러운 물건이다. 로마법은 물건이 성스럽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 물건들이 법적 삶의 밖에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기 위해 성스러움을 알릴 뿐이다.” 몸과 시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성스럽고도 저속한 몸을 민법에서 지우면서 사제와 의사에게 떠넘겼다. 대신 그들은 ‘인격’을 창조했다. 


 “로마법이 표현하는 문명 체계 전체는 인간이 법에 의해 인격의 형태로 ‘재창조’되면서 초자연적 힘의 노리개 노릇을 그만둔다는 관념을 깊은 토대로 삼는다……민법을 탈신성화하면서, 동시에 물건에 대한 인격의 지배를 확언하면서, 로마의 사법체계는 주관적 법, 즉 권리의 맹아 형태를 포함하고 있었다.” 


 인격은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대체하기 위해 민법의 사유 체계 속에 등장했다. 인격의 발명은 법학자들이 탈신성화된 인류를 재창조할 수 있게 했다. 인격은 추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허구가 아니다. 인격은 사물들의 자연적 질서의 바깥에 있는 추상적 구성물이다. 자연적 질서는 개인을 단지 영혼이 거주하는 육체로 본다. 추상은 인격을 몸과 동일시된 인간 바깥으로 끌어냈다. 인격은 법적 권리들의 주체 말고 다른 것이 아니다. 인격은 법의 주체가 되려고, 법의 주관적 개념화를 기초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몸을 인격으로 대체함으로써 몸은 검열된다. 인격의 보호가 곧 인격을 소유한 몸을 보호한다. 그런즉, 민법에서 인격의 개념이 몸을 대신한다. 인격의 발명은 또한 평등을 제도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격이 가지는 법적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공평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실제로 생식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없이 혼인이 가능한 법적 나이가 되기만 하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결혼할 수 있다. 법의 탈육체화와 이로 인한 제도적 평등은 상식에 어긋나는 결론을 낳았다. 부자라서 건강하고 창고에 식량이 가득한 사람과, 가난해서 병들고 굶주린 사람은 법적으로 평등하다. 이 평등은 자유와 연결되는데 부자는 팔지 않을 자유가 있고 빈자는 사지 않을 자유가 있다. 부자가 미술품이나 사치품을 구입하는 일과, 빈민이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사는 일이 구별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민법은 사람은 식량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본다. 빈자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음식을 구하지 못해도 민법은 개입하지 않는다. 기아로 죽는 것은 민법에서는 정상이다. (미셸 푸코가 생명정치에서 말했듯이 중세는 “권력이 사람을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둔다.”)


 민법이 인간이 먹는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다보니 생리학적인 필요와 무관한 사유재산 이론을 발전시켰다. 바로 토지소유권을 사적 소유의 원형으로 삼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격은 갈증도 허기도 모른다. 몸, 육체, 생명이 인격 뒤로 검열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약 몸이, 육체가 소유권 개념의 기초가 된다면 소유권의 형태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몸과 물건의 관계는 인격과 토지의 관계와 다르다. 인간의 몸이 유지되려면 물, 산소, 영양, 잠, 의복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프루동의 소유권 부정보다 신학적으로 몸과 물건의 관계에 접근하는 방식이 훨씬 혁명적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 존재가, 밭고랑에 숨은 밀알이 물과 흙 속의 양분을 어떤 의미에서 전유하듯이, 외부의 다양한 현실들을 독점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동화시킨다는 사실 속에서, 소유의 밑그림 같은 것을 본다……인격과 물건의 관계가 정말로 존재하려면, 이 순전히 사실적인 관계들이 인간의 의지의 영향권 속으로 들어가, 도덕의 평면 위로 솟아올라야 한다.”


 소유권은 몸이라는 물건이 다른 물건과 맺는 관계를 민법이 말하는 인격과 사람의 관계로 대체할 때 탄생했다. 반면 중세 교회법에서는 굶주린 자들의 도둑질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 부자들의 잉여에 대해 가난한 자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정당화된 소유권은 몸을 민법으로 다시 끌어들인다. 이 개념은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두 혁명적이다. 소유권의 이름으로 가장 많이 가진 자의 소유권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의 *시빌리테에서 비롯된 결과이면서 바로 그 로마의 시빌리테에 대한 첫번째 근본적인 공격이었다. 두 번째 공격은 생명공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시작한다. 그에 앞서 물건의 반격이 먼저 있었다.


“로마의 시빌리테는 사물의 힘보다 인간의 의지에 더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문명사에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인격들은 법의 유일한 주체였을 뿐 아니라, 법적 상황의 창조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떤 법적 문제가 제기되었다면 이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인격이 어떤 법적 행위를 실현했거나, 혹은 어떤 법적 사실의 기원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 위계는 법의 탈신성화의 결과 중 하나였다. 고전기 이전의 고대 사회들에서 물건들은 신성함을 지닐 수 있었다……로마법은 성스러움과 거리를 두면서, 인격들이 물건들의 지배자로 남아 있도록 보장했다.”    * 시빌리테 : 시민으로서의 덕성, 사회성, 예의, 선의, 그리고 정치적-사법적 체계


 민법에서 주체는 인격뿐이다. 물건은 오로지 객체로서만 존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물건이 주체로 등장하고 인격이 객체가 되는 경우가 생겼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사태가 늘어났다. 산업화 시대에 이르러 공장은 기계화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기계의 오작동이나 고장으로 인해 산업재해를 당했다. 또,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교통사고가 문제가 되었다. 법은 이런 물건들의 폭력 앞에서 책임을 분산시켰다. 보험과 사회적 부조를 통해서다. 이 사실은 “물건들의 폭력은 그것에 대해 책임지는 인간의 능력보다 훨씬 강력했다”는 증거다. 책임이 사라지고 보험과 사회보장 제도가 리스크를 관리했다. 이는 민법에서 인격이 법적 주체로서 책임을 진다는 대원칙에 대한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민법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이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또, 교통사고나 기계에 의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라는 문제는 인격이 권리의 대상이 될 수 있냐는 질문을 끌어냈다. 보험금은 생명과 인체의 부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더이상 몸이 인격 뒤에 숨어있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생명공학의 시대에 다다른 20세기에 법은 몸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로마의 시빌리테에 대한 치명적 공격이 일어났다. 수혈을 위해 혈액은행에 보관된 피, 이식을 기다리는 장기, 잘렸다가 접합을 기다리는 팔, 조직에서 떼어낸 암세포……목록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것들이 인격으로 불릴 수 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몸에서 분리된 신체 요소의 법적 지위는 무엇인가? 

둘째, 분리된 신체 요소의 법적 지위는 그 전체성 속에서 파악된 살아있는 몸의 지위와 동일한가?


 맨 앞에 제시한 공상의 사건에 대한 질문과 같다. 저자는 생명과학과 의학이 제기한 몸과 관련된 법적 문제들을 주로 수혈을 통해 고찰한다. 피는 인간의 육체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요소이며, 인체와 분리해서 장기간 저장해 재활용할 수 있게 된 최초의 부분이다. 1940년대에 피를 인체 바깥에 보관하는 기술이 생겼다.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1952년 수혈에 관한 법을 제정한다. 이 법에서 “피의 무상성 원칙과 혈액 및 그 산물의 분배에 있어서의 비영리성 원칙”을 세웠다. 쉽게 말해 피는 상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피는 판매되었다! 이를 어떻게 법의 언어가 은폐하는지 보라. 


 <피, 혈장, 혈액부산물들은 “비용 부담을 조건으로 한 인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시술 비용”이 있고, “양도 요금”이 정해지며, 어떤 혈액 생산물들은 “약국에 기탁된다.”> 


 최초의 수혈법 역시, 몸과 몸의 일부가 물건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몸이 물건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몸이 인권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헌혈자들은 피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증’하며 이는 군인의 희생이나 순교자의 행동에 비견된다. 그러나 피가 사람의 몸에서 나와 수혈의 메커니즘으로 들어가면 상품과 다를 바가 없다. 혈액에 이어 정액이, 그리고 유전 물질 전체가 이런 인체 생산물의 범주로 법 앞에 나타난다. 이때 인체 생산물이 신성함의 위계에 따라 법적 지위가 달라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혈장 단백질인 알부민이다. 알부민은 피에서 추출한 것은 상품이 될 수 없고, 태반에서 추출한 것은 상품이 될 수 있다. 피는 신성함을 대표하는 인체의 부분이며 태반은 프랑스에서 폐기물로 여겨진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애초에 로마 민법이 몸을 축출한 이유가 성스러움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몸이 법의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법은 이를 은폐했지만 결국 몸의 신성함과 저속함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성스러움은 인격이 아니라 물건에서 나온다. 알부민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가 성스러움을 인정한다면 인체와 그 유래물은 물건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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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및 저자의 결론]


 지금까지 길게 책의 내용을 설명했다. 요약해보자. 


 애초에 몸은 물건이었다. 신성함과 저속함을 동시에 갖춘 특별한 물건이었다. 몸은 주술과 초자연적 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이 속박된 물건이었다. 법 또한 이런 ‘야만적’ 관습 아래에서 지켜졌다. 그런데 제국으로 발돋움한 로마의 법학자들은 주술과 같은 야만성으로부터 벗어난 합리적인 담론으로 법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했다. 그들은 인격을 발명해 몸을 검열하고 인격 뒤로 육체를 숨겨 탈신체화한 법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몸이 물건이라는 ‘사실’은 끊임없이 출현해 이 체계를 위협했다. 시체, 노예의 법적 지위, 교회에서 영혼과 몸의 관계, 채무의 신체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결혼이 의미하는 육체의 소유권(재생산에 필요한 행위를 완수하기 위해 육체를 서로에게 인도하는 것), 생물학적으로 정당화된 소유권 개념, 구마식, 산업화된 환경에서 노동하는 육체, 교통사고, 그리고 수혈로부터 시작한 생명공학의 발전.


 저자는 민법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제기된 다양한 몸의 문제를 고찰하며 몸이 인격이 아니라 물건이라는 점을 논증한다. 그리고 몸이 법적으로 물건의 지위를 가져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데 낫다고 주장한다. 물건으로써의 몸은 로마법에서 분류한 물건의 종류 중, 상거래 바깥에 있는 물건 비유통물로 다루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도 몸과 관련된 법적 문제에서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단다. 중세 시대 혼인을 다룬 교회법이 한 예가 된다. 교회에서 혼인은 자녀 생산을 위해 부부가 서로 상대의 몸을 소유하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고 봤다.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이며,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다. 이 소유는 성적인 부분에만 한정이며 여러 제약이 있었다. 몸을 소유할 수 있다면 물건이되, 엄격한 제한을 둠으로써 다른 물건과 차별화한 것이다. 저자는 현대에도 인체와 인체 유래물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인체 유래물에 대한 지배적 해석인 분리주의에 따르면 인체는 전체로서 인격이지만 만약 일부가 전체에서 분리되면 물건이다. 위의 공상재판과 책이 다룬 여러 주제들을 보면 인격에서 물건으로 법적 지위가 바뀌는 사태는 혼란을 일으킨다. 현대에 이르러 법은 더이상 몸을 외면할 수 없다. 저자는 신체가 성스럽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검열과 비일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신체가 어떤 상태이든, 살아있든, 죽었든, 전체로서 그리고 분리된 부분으로서의 신체에 독특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몸은 물건이되, 상품이 아닌 물건이다.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몸을 물건으로 보면, 그래서 각자가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면, 몸과 몸을 구성하는 요소가 법적 안정성을 얻는다. 또, 몸이 필요로하는 물리적 통합성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다. 위의 공상 재판 결과를 보라. 인격이 자신의 몸을 소유하는 권리를 가지면 공권력의 부당한 요구나, 인체 생산물을 상업화하려는 요구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의의는 소유권에 대한 관점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데 있다. 내 몸이 나의 소유물이라면 나는 태어나자마자 최소한 내 몸을 ‘소유’하고 있게 된다. 모든 인간에게 자신의 몸은 최소한의 소유물이다. 소유권은 이처럼 생물학적 필연성으로 정당화된다. 인간은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몸과 물건과의 관계를 상기해 보자. 몸은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다. 공기, 물, 식량…… 몸이 물건의 영역에 들어가면, 생명이 법의 영역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몸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법 안에 끌고 온다. 이로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생존권이 보장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 사람을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은 이렇게 보장받을 수 있다. 


[생명윤리법, 그리고 한국의 경우]


 이 책이 1993년 프랑스에서 나왔고 이듬해인 1994년에 프랑스에서 최초로 생명윤리법이 제정되었다. 생명윤리를 어떻게 법으로 다룰지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책이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저자가 주장한 내용이 - 몸이 물건이라는 - 프랑스 법에 들어갔을까? 책의 번역을 감수한 이준형 교수가 후기에 쓴 글을 보자.


<이들 법률의 내용은 민법과 (공중)보건법에 편입되었는데, 사람의 몸에 대한 존중과 사람의 유전자 감정 및 그 결과에 기반한 신원확인은 민법에, 그리고 생식세포의 취급과 장기이식에 관한 규정은 (공중)보건법에 각각 들어갔다. 특히 민법의 경우는 제1장 사람에 관하여에 제2절과 제3절을 추가했다. 거기에 “법률은 인격의 우위를 확보하고 그 존엄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며 생명이 시작된 순간부터 사람의 존중을 보장한다”(제16조), “모든 사람은 그 신체를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제16조의1 제1항)는 원칙 규정과 함께 사람의 몸과 그 구성부분, 산출물을 재산권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그 거래를 무효로 규정하고(제16조의1 제3항, 제16조의5), 나아가 대리모 금지(제16조의7) 등을 강행규정으로 하는 (제16조의9) 내용을 포함했다. 또한 유전자 감정 및 그 결과에 기한 신원확인도 엄격하게 규제하였다.(제16조의10 내지 제16조의13)>


 프랑스 생명윤리법의 내용을 읽고 조금 의아했다. 위 내용만 보면 프랑스 민법은 인체와 인체유래물을 물건이 아니라 인격으로 보는게 아닌가? 한국에서 인체와 인체유래물의 법적 지위를 다룬 논문에서도 프랑스 생명윤리법의 취지를 몸이 물건이 아니라 인격으로 두고 있다 평가했다. (인체유래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인격적 측면에서의 고찰, 유지홍, 서울대학교 법학 제56권 제2호) 그런데 생각해보니, 프랑스 법이 인체와 인체유래물을 인격권만 가진다고 보는 견해는 피상적 이해가 아닐까 싶다.  


 (1) 몸을 검열해 치워버리려고 하던 법이 정면으로 몸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이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2) “재산권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 자체가 몸이 물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나왔다. (3) 인체가 상거래 바깥에 있는 비유통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4) 몸의 부분에 위계가 있다. 어떤 부분은 거래와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말은 대상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뜻이다. 몸 전체를 인격으로 본다면 이런 규정은 불가능하다. 인격에는 위계가 없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온 공상 재판 이야기는 놀라웠다. 프랑스 법(1994년 이전)을 따르면 무죄라니! 그리고 이어서 사람의 몸이 물건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몸이 물건이라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의 주장을 점점 수긍하게 되었다. 인격, 물건, 몸, 소유가 어떤 개념인지 역사적 변천에 따라 알아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책을 읽고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싶어서 검색으로 몇몇 논문을 찾아봤다. 한국의 법 독트린은 몸 전체는 인격이고 분리되면 물건이라는 분리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프랑스 생명윤리법이 인체의 인격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한다고 여기고 있다. 더해서 분리주의를 지양하고 프랑스의 예를 따라 인체와 인체유래물을 인격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의도를 이해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신체를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물건 따위가 아니라 인격 그 자체로 몸을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유럽 역사를 통해 통찰했듯이 존엄성은 인격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성스럽다면 인격이 아니라 물건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성스러운 물건을 단순한 상품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여긴다. 또, 프랑스의 생명윤리법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 문구만 보면 인체의 인격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체가 물건의 속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1)~(4)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법과 법개념은 서양에서 왔다. 인격, 소유, 물건의 개념도 같이 따라왔다. 단순히 서양의 예를 그대로 따르자는 주장을 하는게 아니다. 그들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개념을 만들었고 변화시켜 왔는지 그 취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리도 ‘인격’이라는 개념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우리의 몸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지, 몸이 물건이라는 법적 지위를 가지는 일이 더 나은 방향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건에는 상품과 상품이 아닌 것이 존재한다. 상품이 아닌 성스러운 물건으로 몸을 대하는 것이 추상적 인격 개념으로 다룰 때보다 많은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법적 일관성 아래 소유권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격 개념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인격과 물건이 통합된 그 중간의 무엇을 새로 창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종교적 성스러움은 현대에 이르러 인간의 존엄성으로 바뀌었다. 몸이 물건이라 여겨진 덕분에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잘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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