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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구나 Mar 18. 2024

정육점 사장님의 사업 수완

불편함이 고객을 만든다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 정말 맛있는 정육점이 있습니다.

집에서 귀한 손님이 오시거나 가족들끼리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어김없이 이 정육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입맛이 좀 까다로운 편인데 소고기, 돼지고기 모두 정말로 퀄리티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니 근처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강력 추천드립니다.

오늘은 이 정육점 사장님을 통해서 배우는 사업 수완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현물 쿠폰​

이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면 일정 금액에 대해서 쿠폰으로 Reward를 해주십니다.

그것도 특이하게 쿠폰 한 장에 200원으로 뭉탱이 10, 20장으로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주시지요.

아래와 같은 사진으로 말입니다.​​


한 장에 200원짜리를 저렇게 스테이플러로 거칠게 찍으셔서 주십니다.

기존에 다른 정육점을 이용할 때는 요즘 디지털 사회다 보니 모두 핸드폰 뒤자리를 부르면 적립을 해주는 시스템인데 이렇게 쿠폰으로 주시니 시대에 못 따라가시는 영업을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주실까 계속 궁금하기도 하고 쿠폰이 번거로우실 것 같기도 해서 적당히 안면을 트면 말씀을 드리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소고기를 자주 사 먹기도 했고 제가 소고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드디어 사장님이랑 어느 정도 안면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물어보기로 했죠.


라구나 : 사장님, 저 근데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사장님 : 옙? 어떤 게 궁금하세요?

라구나 : 아, 요즘 다른 정육점은 핸드폰 번호로 마일리지 적립을 해주시는데 왜 이렇게 쿠폰으로 주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사장님이 갑자기 살짝 웃으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장님 : 아아, 옙 이유가 있습니다.

라구나 : 아 이유가 있으세요?

사장님 : 아~옙. 쿠폰으로 드리면 쿠폰이 집에서 여기저기에서 보이시니까 고기 드실 생각이 더 나지 않으실까 해서요.


저는 정말 망치로 뒤 목을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동네 장사라서 시스템을 갖출 여력이 없으시거나 모르셔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다 의도가 있으셨던 것이지요!

사장님 말씀처럼 쿠폰이 200원에 한 장이다 보니까 집에서 이런 상황이 많이 연출됩니다.


물론 저렇게 굴려놓지는 않고 서랍장에 잘 넣어두고는 있지만 꽤나 부피를 차지하고 있으니 쿠폰이 보일 때마다 고기 생각이 납니다.

'쿠폰'이 '넛지'로 작용합니다.

쿠폰을 보면 고기 생각이 나기도 하고,
쿠폰이 많으면 쿠폰을 쓸까 해서 고기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저 파란 쿠폰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기 생각이 나는 것이지요...

컴퓨터에 마일리지 적립식으로 적립을 하면 내가 얼마나 적립을 했는지도 모르고 시각적으로 생각이 날 홍보 용도가 없지요.
나도 편하고 고객도 편하려고 컴퓨터에 마일리지 적립을 한 것이었는데...
그게 고객과의 관계를 얇고 가늘게 만들어버리는 '독'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사장님은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저런 '홍보용 마일리지 쿠폰'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계셨습니다.

1) 정육점 홍보
2) 고객과의 거래 연속성 유지

다른 정육점과는 사소하지만 큰 차별 포인트가 있던 것이지요.

이어서, 두 번째 사업 수완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 현장에서 즉시 작업


사장님네 정육점에는 미리 썰어둔 고기가 없습니다.

주문을 하면 그 즉시 작업을 해서 주시지요.

그래서 사람이 많을 때 잘 못 가면 30분씩 기다리기 일쑤입니다.

처음 정육점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무슨 이런 정육점이 있냐고 돌아가실 수 있는데, 이 정육점을 이용해 보신 손님들은 모두 아무 말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이유는 고기가 맛있기 때문입니다.


30분을 기다리면서도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서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직접 눈으로 사장님이 작업하시는 것을 다 볼 수 있지요.

한우 꽃등심을 주문하면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름기는 다 떼고 드릴게요"


다른 정육점에 가거나 대형마트에서 고기를 사면 기름기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살코기가 잘려나가더라도 기름기를 깔끔하게 제거하고 고기를 주십니다.

가격은 물론 기름을 뗀 가격이지요.


그렇게 작업하시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고기를 사고 먹어보면 매우 만족스럽기 때문에 정육점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기를 삽니다.


더 웃긴 건 저도 예전에는 소고기 1++을 엄청 따졌는데 여기 한우는 1+인 경우도 있고 1++인 경우도 있는데 그런 걸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습니다.

고기를 사가서 실망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죠.


사장님은 직접 몸으로 고객과 소통을 하고 계십니다.


고객님이 먹을 고기를 하나하나 정성껏 시간들여 손질하고 있다고.

손님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봅니다.

다 사전에 작업을 해두고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지도 않고 고기를 쉽게 살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보다 더 좋은 성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맛있는 빵집이나 식당에서 사람들이 줄 서있는 것 자체가 홍보가 되듯이 정육점에 줄 서있다고 하면 지나가다 처음 보는 사람도 얼마나 특별한 가게일지 궁금하지 않을까요?


요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돈을 주고 삽니다.

코인이나 NFT 같은 것들이 그렇지요.

저는 아직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물 쿠폰, 현장에서 바로 작업하시는 모습.

이런 것들이 사장님과 손님 간에 강력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닐까요?

고기의 퀄리티는 기본이고요.


어떤 장사나 사업이든 '마케팅' '홍보'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듭니다. (제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 전자책이 한 권도 안 팔려서...)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어떻게 홍보할까?'가 더 중요해보입니다. 퀄리티는 비슷비슷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어떻게 좀 더 홍보하고 구독자들과 어떻게 유대관계를 더 밀접하게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

기분 좋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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