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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구나 May 02. 2024

아버지의 손을 언제 잡아보셨나요?


얼마 전, 주말에 부모님이 집에 놀러 오셨습니다.

놀러 오셨다기보다는 와이프가 결혼식이 있어서 두 딸을 같이 보려고 오셨지요.


집에서 한참 놀다가 점심 먹고 둘째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밖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놀이터를 갈까 어디 다른 곳을 갈까 하다가, 

집 근처에 안산이 있는데 저희 집 거실에서 안산 자락길 전망대가 보입니다.



아버지께서 매번 전망대를 궁금해하셔서 두 딸을 데리고 전망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첫째 만 데리고 가본 적이 있는데 힘들어해서 자꾸 안아달라고 했습니다.그때 첫 째보다 더 어린 둘째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길을 나섰습니다.



영차영차

딸이 힘차게 걸어갑니다.초반에 힘을 다 쓰고 후반에 안아달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둘째도 언니를 따라서 올라갑니다.

곰 모자를 벗겨도 쓰고 벗겨도 쓰고더운데 저 모자를 끝까지 쓰고 갑니다.



날씨가 좋아서 둘레길 산책하는 맛이 났습니다.

꽃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피어있는지요?

첫째 딸이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첫째 : "겨울꽃이다!"


이 말이 얼마나 예쁘고 좋던지요.

벚꽃이 떨어지는 것이 눈 같았는지 '겨울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참 예뻤습니다.


'사람들은 벚꽃을 봄의 시작으로 보는데,

우리 딸은 벚꽃을 눈이 내리는 겨울꽃으로 보는구나'


'봄에 피는 겨울 꽃'

모순되기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는 멋진 표현이었습니다.

딸의 그 한 마디가 제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더 재미는 일이 생겼습니다.



자락길에 올라가니 양방향으로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딸들이 이쪽저쪽 장난을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끊임없이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 모두 어린아이 둘이 그런 모습을 예쁘게 봐주셨는지 정답게 인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와 아버지는 사람들 통해에 방해가 될까 봐 두 딸에게 손을 꼭 잡고 걸어가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라구나 : "첫째, 둘째, 둘이 손 꼭 잡고 가."


그때 첫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첫째 :  "아빠도 할아버지 손잡아"


그 말에 깜짝 놀라고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적을 떠올려 봤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최소 30년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은 기억이 없다는 말이지요.


어린아이처럼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딸이 다시 말합니다.


첫째 : "아빠도 할아버지 손잡으라니까~"


4돌도 안 지난 아이가 뭘 아는 것일까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마치 장난을 치듯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랑 아버지 모두 '허허허' 웃고 있는데 딸은 계속 재촉합니다.


첫째 : "할아버지 손잡아~"


그때 아버지가 먼저 제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첫째는 인생 2회차인 듯 방긋방긋 웃으면서 그제야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랑 10초도 안되는 시간을 손을 잡고 있었지만, 참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옛날 생각도 나고요...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가족인가?'

아버지의 늙어버린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사이가 '가족'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손녀 딸들이 함께 사진도 찍었지요.

그리고 얼마 뒤 새벽에 혼자 좀 걷고 싶어서 그 자락길을 다시 올라갔습니다.



아버지와 두 딸과 올라왔던 일을 생각하면서요...

아버지의 손을 잡은 이야기.

어찌보면 별거 아니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은 감촉, 그리고 딸의 웃는 얼굴...

제 인생을 돌아볼 때 빠른 속도로 지나갈 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는 두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사이가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가 보여주는 모습에서 아쉬운 차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가 보여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에도 또 차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모습보다 훨씬 자상하고 손녀 딸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본 모습이 어쩌면 저 모습이고 내가 본 것은 아버지와 내 사이가 그렇게 만들었겠구나...'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싫어했던 모습으로 가득했던 제 머릿 속 스케치북에

그저 손녀 딸들을 사랑해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덧칠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기억으로만 남아야 하는 것이 '가족'이겠지요?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언제 마지막으로 잡아 보셨나요?

어머니의 손을 잡는 것도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딸이 또 도와주면 좋겠네요...)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손잡고 산책을 해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하고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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