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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구나 Apr 25. 2024

대중목욕탕 세신이 이런 느낌?

20년 만에 이룬 꿈, 그러나...


지난 주말에 장모님 장인어른 찬스로 두 딸을 맡기고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포구 일대의 아파트 임장을 했는데 꽤 오래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좀 쉬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찜질방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찜질방에 가서 목욕도 하고 누워서 좀 쉬자'


장모님, 장인어른 집 근처에 있는 찜질방을 검색해 보고 그중에서 상태가 좋아 보이는 곳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대중목욕탕은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대중목욕탕을 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의 영향일까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 물속에 제가 들어가는 것이 탐탁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코로나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주 갔는데 코로나 영향이 크긴 합니다.


아무튼 왔으니까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즐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띈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신 가격표'였습니다.


기본 세신 : 18,000원

건강 세신 : 30,000원



검색해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동네 목욕탕을 자주 갔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 형, 저 셋이서 열심히 서로의 때를 밀어줬고 특히 아버지께서 어린 형과 저를 밀어주시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끔 '때밀이 아저씨'가 사람들 때를 밀어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최소 20년 전의 이야기기 때문에 가격이 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때밀이 아저씨'에게 때를 밀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세신'은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엄청난 부자'들이 '때밀이 아저씨'에게 대신 '때'를 밀어달라고 하는 것


어린 저에게는 '세신'이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개가 주인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서 몽둥이만 보면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는 것처럼 저에게 '세신'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나이 40을 앞두고 세신 가격을 보니 비싸긴 하지만 돈 없어서 못 할 정도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어렸을 때 마음과 별로 다른 것이 없지만...

벌써 을 버는 '어른'이 된 것입니다.


언제 또 이렇게 대중목욕탕을 올지 몰라서 과감하게 세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기본 세신이 아니라 3만 원짜리 '건강 세신'을 질렀습니다.

기본 세신은 때만 밀어주지만 건강 세신은 세신+등 마사지+발 각질 제거+샴푸가 포함된 코스입니다.


카운터에 가서 세신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니까 물어보니 가서 벨을 누르면 된다고 합니다.

결재는 언제 하는지 물어보니 다 하고 내면 된다고 합니다.


탕에 들어가니 세신사 두 분께서 벌써 누군가를 세신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면밀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누워야 하는지,

뒤로 누워야 하는지,

언제 옆으로 누워야 하는지 등등 살펴보았지요.




그러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미리 학습을 해 두었기 때문에 앞으로 벌러덩 누웠습니다.

생각보다 민망했지만 마치 여러 번 해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있었습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세신사께서 자연스럽게 저를 리드해 주셨습니다.

팔을 들어서 올려서 구석구석 밀어주시고

다리도 각도 조정을 하셔서 구석구석 밀어주셨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중요 부위에 접촉이 여러 번 되어서 민망한 순간이 계속 있었지만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있었습니다...^^;


화끈 거리는 크림으로 등 마사지도 해주시고 천장에 붙은 철봉을 잡으시고 발로 등과 허리를 주물러주기도 하셨습니다.

발 뒤꿈치 각질도 갈아주시고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샴푸도 해주셨고요.


정말 편하고 시원했습니다.

기본 세신이면 18,000원인데 동남아 가서 마사지받는 것과 비교해 봐도 가격이 저렴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구석구석 남의 몸 때를 밀어준다는 것이 이 정도 '가격'밖에 안 하는 것인가 싶고요...

시원하게 세신 서비스를 받고 나오니 우선 돈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 어머니, 장인어른, 장모님, 와이프도 세신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 가격에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 '가성비'도 좋고 기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마도 한 번도 '세신'을 해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별 것 아니지만 이 정도도 못 해 드리면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생각은 '그리움'이었습니다.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세신'을 하면서 하나의 풍경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대중목욕탕에서 아버지와 형과 함께 목욕을 하면서 세신 가격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풍경 말입니다...




수증기가 가득 찬 목욕탕으로 창 밖에서 햇빛이 들어와 수증기와 주황색 불빛이 어우러진 주말의 풍경.

그 목욕탕은 재건축을 하면서 없어졌지만 제 마음속에 그 풍경은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그때가 좋았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 커져버린 제 모습과 어린 시절 제 모습이 서로 다르지 않은데 이제는 달라져 버린 것처럼 봐야 한다는 것이 낯설다고 할까요?


마치 세신 가격은 변화가 없는데 제가 변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20년 만에 꿈꾸던 세신을 했지만 이게 제가 꿈꾸던 세신이 맞나 싶고 꿈은 꿈으로 내버려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신을 하는 순간 이제 더 이상 세신을 동경하고 꿈꾸던 어린 저와는 인사를 해야 하는 것 같았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주말에 가족들과 이른 아침 목욕탕을 가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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