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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Feb 18. 2022

기미상궁

엄마가 나를 임신하셨을 때 거의 열 달 동안 과일만 드셔서 그런 것인지 나는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술도 담배도 안 하는 나는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 먹어도 되지 않느냐는 혹은 맛있는 것을 사 먹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강박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과일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식구들은 나와 달리 과일을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정확히 딸은 정말 맛있는 과일만 먹으려 하고, 남편의 경우는 과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특정 과일을 먹으면서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한 번은 커다랗고 커다란 배를 하나 깎았는데, 혼자 다 먹기 버거워서 식구들을 소환했다. 

-여보! 배 먹어요! 

-글쎄, 안 당기는데. 

-윤미야, 배 먹어!

-엄마, 저 배 터질 것 같아요! 

-여보, 이 배 진짜 맛있어! 정말 단데! 

-윤미야, 엄마가 배 진짜 맛있대! 하나 먹어봐! 

-내가 무슨 기미상궁이냐고! 

-그러게! 왜 쓸데없이 기미상궁을 자처하고 그래? ㅋㅋㅋ 


기미상궁을 자처해서라도 식구들에게 과일을 먹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 배가 너무 커서 식구들이랑 나눠먹으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과일을 먹을 때면 종종 나는 식구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과일 #배 #기미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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