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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Jun 03. 2022

생멸치를 몇 마리 넣어야 조림을 할 수 있을까?

막중한 책임감 

롯데슈퍼에서 생멸치가 보이길래 한 팩을 샀다. 요리는 내가 하겠지만, 손질은 남편에게 부탁했다. 

-여보, 나 멸치한테 미안해서 손질은 당신이 해줘요. 

-아니, 끓이는 건 안 미안하고? 

-손질하면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멸치 손질을 끝낸 남편이 내게 손질된 멸치를 건넸다. 


-꽤 많네. 실패하면 안 되겠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떠안은 것 같아. 

-맛있겠지 뭐. 당신 요리 잘하니까. 


얼마나 끓였을까, 멸치조림이 다 돼서 남편과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남편은 조림을 먹으려고 앉은 것이고, 나는 남편이 먹는 모습을 보려고 앉았다. 


-여보, 맛이 어때? 

-맛있어. 

-안 비려? 

-응, 안 비려. 그런데 가시가 많이 거슬리네. 

-아, 다음번엔 가시도 손질할 때 버려야겠네. 

-머리는 맛이 어때? 

-잘 모르겠어. 살이 너무 없어서... 

-몸통 맛은? 

-멸치 맛이야. 


나는 잠시 생각해봤다. 멸치가 멸치 맛을 내는 건 당연한데, 과연 멸치가 멸치 맛을 낸다면 맛있는 건지 조림을 1도 먹어보지 않은 나는 아무리 머릿속으로 맛을 상상해보려 해도 와닿지가 않았다. 


-냄새는 정어리 냄새가 나는데. 정말 멸치 맛이야? 

-응, 멸치 맛 나. 나쁘지 않은데. 


이쯤 되면 한 번 먹어볼 만도 하지만, 나는 굳게 다문 입과 '생멸치는 비릴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내 뇌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고,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인터넷에 보니까 쌈밥집에서 멸치조림을 내놓더라고. 

-그러니까. 맛은 나쁘지 않아. 그런데 이것도 생선이라고 생각보다 가시가 억세네. 

-또 해 먹을까? 

-글쎄. 맛은 있는데. 큰 생선은 한 마리만 손질하면 되는데 얘네들은 한 번 먹으려면 수십 마리를 손질해야 하니까 귀찮긴 해. 


생멸치 조림 실험은 맛으로 보면 성공한 축에 속했지만,  노력에 비해 입 속에 들어가는 살이 적고, 생각보다 가시가 억세서 내년에나 한 번 더 먹을 것 같다.  그나저나 세상은 넓고 식재료도 많다.


오늘 실험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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