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기억력

by 승주연

남편: 여보, 당신 약수역에서 삼겹살 먹었던 거 기억나?

나: 삼겹살?

남편은 언제 어디에서 뭘 먹었는지, 어떤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는지와 같은 것들을 잘 기억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런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순간 머릿속으로 그날의 기억을 소환해보려고 노력해본다. 삼겹살이라... 만약 우리가 말고기나 상어고기를 먹은 기억을 떠올리라면 그런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쉽게 떠올렸겠지만 삼겹살은 대한민국 국민의 소울푸드 같은 것이고, 우리 부부도 굉장히 자주 먹는 돼지고기 부위 중 하나였다. 약수역에 있는 식당이라고 제한한다 하더라도 약수역에 있는 식당 중에 우리가 삼겹살을 먹은 식당과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라는 요구는 내겐 너무 어려웠다. 잠시 고민하던 척을 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삼겹살을 우리가 먹었었나?

남편: 약수역에서는 몇 번 안 먹었으니까 기억하겠지.

고작 몇 번이라는 추가 정보를 더한다 하더라도 내 기억력은 '그런 기억 따위 개나 줘버려.'라는 식으로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나: 글쎄. 내가 기억한다고 거짓말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기억 못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나을까?

남편: 됐어. 어떻게 그런 걸 기억 못 하냐?

나: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나를 모르는 당신이 더 놀라울 뿐이야. 그래도 어느 쪽이 기분이 덜 나쁜이 말해줘 봐. 그럼 내가 맞춰줄게.

남편: 됐어! 됐다고! 흥!

나: 삼겹살 나랑 먹은 건 맞지?

남편: 어이가 없군.

나: 혹시나 해서. 다른 여자랑 먹은 걸 나랑 먹었다고 생각한 건 아닌가 싶어서. 나보단 기억력이 좋으니까 당신 기억력을 믿을게. 그나저나 삼겹살은 언제 먹었을까?


미안하지만 내 머릿속은 중요한 정보로 가득 차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남편이나 가족과 어딜 가거나 함께 먹은 기억 중 굉장히 특이한 기억이 아니면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문득 나도 우리가 어떤 영화관에서 어떤 영화를 함께 보면서 팝콘을 먹었는지, 팝콘을 먹다가 쏟았는지와 같은 것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면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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