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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Jan 10. 2021

러시아 작가 체호프에 관하여...

고품격 문화 예술 매거진 아츠앤컬쳐의 2020년 10월호에 수록된 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복을 좇으며… 


 2020년은 세계적인 대문호 체호프의 탄생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러시아 작가 체호프는 단편작가이자 극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셰익스피어, 디킨스와 더불어 가장 많은 작품이 연극으로 상연되거나 영화로 제작된 세계 3대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체호프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고 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예스 24나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을 보더라도 여전히 19세기 고전 작가 중에서는 톨스토이, 체호프,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꾸준히 번역되고 있고, 많은 작품이 소개가 되었기에 체호프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많을 것 같지만, 체호프의 개인사,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사랑에 대해서, 즉, 그가 자신의 아내인 올가 크네페르와 나눈 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체호프가 여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만 모아서 출간한 것이 5권이 넘는데, 그중 3권에 그가 아내인 올가 크네페르와 주고받은 편지가 수록돼있다. 

 이 두 사람은 자주 만나지는 못 했지만, 수많은 편지로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들은 거의 매일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5년 동안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결혼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그들이 서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체호프는 작가로서 작품을 집필해야 했고, 올가는 극장에서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떨어져 있는 기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더 애틋했는지도 모른다. 

1899년 여름부터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체홉이 숨을 거두는 1904년 봄까지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 중 체호프가 올가에게 쓴 편지와 전보만 433편에 달하며, 400통 넘는 편지를 올가가 체호프에게 썼다고 한다. 


 체호프가 크네페르와 주고받은 편지는 체홉의 말년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올가 크네페르가 체호프의 말년에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은 체호프가 그녀에게 쓴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체호프는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 뭔가 중요한 내용을 쓰더라도 농담조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올가 크네페르가 체호프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러자 체호프는 그녀에게 ''삶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어봤었지? 그건 마치 당근이 뭐냐고 묻는 것과 같아. 당근이 당근일 뿐이듯, 삶도 삶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거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식의 대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체호프는 늘 이런 식의 답변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고, 그의 삶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남의 연애편지를 읽어본다는 것은 썩 좋은 행위는 아니지만, 체호프는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인 19세기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작가이며, 그가 아내와 나눈 편지는 체호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핑계 삼아 깊어가는 가을밤에 그들이 나눈 닭살 돋는 연애편지를 읽어볼까 한다.  


연애편지


그게 무슨 말이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소? 당신이 편지를 너무 오랫동안 안 써서 혼자서 온갖 추측을 하다가 당신이 나를 잊고 카프카스에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소. 정말 그곳에서 결혼을 한 것이라면, 상대가 누구란 말이요? 

(중략) 

당신이 허락한다면 당신의 손을 꼭 잡고 행운을 빌어주고 싶소. 

1899년 6월 16일 체호프가 올가에게


제가 당신이 쓰는 편지에 답장만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요즘 들어서 계속 편지 쓸 기분이 아니었어요. 마음을 추스른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주위에 있는 자연도 눈에 들어오고, 자연의 섭리도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중략) 그런 후에 저는 신문과 편지를 가지러 아래로 내려갔고, 당신이 보낸 소식을 보자 뛸 듯이 기뻐서 큰 소리로 웃었지 뭐예요. 저야말로 작가 체호프 여배우 크네페르를 까맣게 잊으셨나 보다고 생각했거든요. 편지 고마워요. 멜리호보에서 작업을 하시나 본데, 정말로 거기 아직 추워요? 그런데 저는 추운 5월이 지난 후에 그곳에서 따뜻한 남쪽 지방의 태양에 몸을 녹일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해요.  

1899년 6월 22-23일 도시 므츠헤타에서 올가가 체호프에게 


왜 안 오는 거죠, 안톤? 당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제가 편지를 안 쓰는 이유는 당신을 기다리기 때문이고, 당신을 무척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뭐가 문제죠? 망설이는 이유가 뭐죠? 나는 이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걱정만 앞서는군요. 

1900년 9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체호프에게 


사랑하는 올랴, 나의 사랑스러운 배우, 뭐가 그렇게 불만이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소? 나를 용서해요, 내 사랑, 화내지 마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오. 내가 지금까지 모스크바에 갈 채비를 하지 못 한 이유는 몸이 안 좋기 때문이라오. 정말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오. 나를 믿어줬으면 하오. 정말이라오! 못 믿겠소? 

1900년 9월 27일 얄타에서 체호프가 올가에게


''나는 여배우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당신과 결혼했을 때 당신은 겨울에는 늘 모스크바에서 생활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하지만 나는 100만 분의 1만큼도 서운하지 않으니 이 일로 인해 너무 자책하거나 속상해하지는 않았으면 하오.'' 

1903년 1월 20일 체호프가 아내 올가에게 


''행복한 사람은 지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행복을 소유할 수 없으며, 다만 추구할 뿐이다''(체홉의 희곡 '세 자매' 중)는 명언을 남긴 체호프는 과연 행복했을까? 정말 그가 말한 것처럼 행복은 잡히지 않는 것일까? 사랑은 무엇이며, 행복은 무엇일까? 가을이기 때문인지 체호프에 대해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 요즘 문득 생각이 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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