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주연 Jan 10. 2021

한노 번역의 어려움

2014년에 있었던 제 6회 세계번역가대회 발제문 전문  

번역의 어려움(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을 중심으로)과 번역 출판의 ‘’내일’’ 


저와 공역자 알렉산드라 구델레바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오정희의 ''불의 강’’,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김영하의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는 아무도’’까지 총 4권을 번역했습니다. 한진주씨와 번역한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를 포함하면, 제가 개인적으로 번역한 책은 총 5권입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몇 권의 책을 번역하면서 문득 ''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더랬습니다. 


 번역한 5권 중 현재 4권이 러시아에서 출간이 되었습니다. 4권 모두 애착이 가는 작품들이지만, 이 중 영화로도 나와있고, 제가 생각했을 때에 비교적 재미있는 작품인 ‘’고령화 가족’’을 번역하면서 만났던 몇 가지 어려움을 나눌까 합니다.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몇 가지 고민들 … 


*아래에 비교한 한국어 텍스트는 문학동네에서 2010년도에 발간된 ''고령화 가족’’에서 발췌한 것이며, 비교한 번역본은 러시아에서 출간되기 직전의 원고입니다.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냈던 그는 몇 년 전, 아는 후배와 함께 라텍스 사업을 해보겠다며 캄보디아로 건너갔다가 이 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슬그머니 엄마 집으로 기어 들어와 삼 년째 눌어붙어 있는 중이다. 그는 이제 닭죽을 다 먹고 냄비 바닥에 눌어붙어 있는 것을 숟가락으로 긁어먹기 시작했다.’’(p.19) 

По молодости он периодически менял свои пристрастия и род деятельности, несколько лет назад, например, уехал в Камбоджу, пытался там заняться производством латекса, но быстро прогорел и вернулся домой с пустыми руками. Тогда он поселился у матери и вот уже три года сидит у неё на шее.  Он доел весь рис и стал скрести ложкой по дну кастрюли. 

 이 예문에서 역자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삼 년째 눌어붙어 있는 중이다''라는 문장만 보면, ''сидеть у кого на шее'' (~에게 신세를 지다)라는 표현을 쓰면 됩니다. 하지만, 그 다음 문장에 ''그는 이제 닭죽을 다 먹고 냄비 바닥에 눌어붙어 있는 것을 숟가락으로 긁어먹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에서 작가는 또다시 ''눌어붙어 있는''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역자는 ''눌어 붙어 있다''라는 표현을 살려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가독성을 살리는 의미에서 저희는 러시아어의 표현인 ''сидеть у кого на шее''를 써서 번역을 했습니다.  



아욱국과 고들빼기김치, 조개젓과 감자조림, 뱅어포 등 무엇 하나 특별하달 게 없는 음식들이었지만 이십 년이 넘은 그때까지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잊지 않고 용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p.25)


Здесь был суп из просвирника с соевой пастой, кимчи

[1]

, солёные морские моллюски, жареная картошка в соевом соусе, сушёные японские анчоусы. В общем-то это была обыкновенная еда, но прошло уже двадцать лет, как я не жил в семье, а мама до сих пор помнила, что я люблю. 


[1]Кимчи – квашеные овощи, часто в остром соусе из красного перца. 


이 경우 저희는 먼저, ''아욱국'', ''고들빼기김치'', ''조개젓''과 ''감자조림'', ''뱅어포''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이며, 각주를 페이지 밑에 넣을 것인지, 각주를 넣지 않고 번역하는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중에서 저희는 각주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드는 고민은 ''이십 년이 넘은 그때까지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잊지 않고 용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문장입니다. ''20년이 지난 시점에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신다는 것이 놀랄 일인가?''. 만약, 놀랄 일이라면, 20년 동안 그 음식을 안 하셨기 때문일 것이며, 20년 동안이나 음식을 안 하셨다는 것은 ''내''가 어머니의 집에 20년 동안 발길을 끊고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원문에는 없는 ''прошло уже двадцать лет, как я не жил в семье''(내가 가족과 함께 살지 않은 지 20년이 흘렀다)가 번역본에는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김치를 설명하기 위해 주를 달았는데,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식재료가 비단 배추 외에도 갓, 무우(갓김치, 총각김치 등) 등을 넣어서 만들 수 있으며, 매운 김치 외에도 백김치라는 하얀 김치도 존재하기 때문에, ''квашеные овощи, часто в остром соусе из красного перца. ''삭힌 야채이며(배추, 갓, 무우 등), 자주 붉은 고추가 들어간 매운 소스가 들어간다''라고 주를 달았습니다. 



 자신도 성질대로라면 그 개 같은 인간을 당장 맺돌에 들들 갈아서 국수를 말아먹어도 시원찮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그 인간의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 괜히 나서서 일을 만들지 말라는 거였다. 게다가 그 인간의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 괜히 나서서 일을 만들지 마라는 거였다. (p.36) 

Она кричала, что у неё есть гордость и она хотела бы этого сукина сына провернуть в мясорубке или даже сделать из него соус для лапши, но, как бы то ни было, она не хочет его видеть и просит меня не усложнять ситуацию.


이 경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부은 ''맷돌에 들들 갈아서 국수를 말아먹어도 시원찮겠지만''입니다. 여기에서 맷돌에 들들 간다는 것은 바로 콩류를 의미하며, 따라서 국수를 말아먹는다는 의미는 콩, 들깨 등을 갈아 국수를 말아 먹는다는 의미이니 ''콩국수''가 됩니다. 하지만, 저자가 어떤 재료를 구체적으로 갈아서 국수를 만들어 먹는다는 것인지 언급을 하지 않았고, 이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화자가 지금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는 상태를 표현해야하는 것이므로, ''Я хотела бы этого сыукин провернуть в мясорубке или даже сделать из него соус для лапши'', 즉, ''개자식을 고기분쇄기에 넣어서 갈거나 심지어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그걸로 국수에 넣을 소스를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로 옮겨봤습니다. 

이때 한국어 원문의 내용 ''맷돌에 들들 갈아서 국수를 말아먹어도 시원찮겠지만''을 ''맷돌에 들들 갈고, 그리고 그걸 갖고 국수를 만들어 먹는 걸로도 분이 안 풀리겠지만''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러시아어로는 ''고기분쇄기에 넣어서 갈거나 심지어는 그걸로 국수 소스를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라고 옮김으로써 ''국수를 말아먹어도 시원찮을 만큼의 ''화자가 가진 분의 정도를 좀 더 와 닿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함마가 교도소에 가 있는 동안 미연이 집을 떠났다. 그녀는 상고를 졸업하고 정수기를 파는 개인사무실에 잠깐 나가다 '아는 언니'의 소개로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집에서 다니기에 너무 멀다며 직장 근처로 방을 얻어 나갔다. '아는 언니'와 함께 자취를 하겠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면 미연의 인생엔 '아는 언니'가 참 많이도 등장했다. '아는 언니'의 소개로 취직을 하고 '아는 언니'와 함께 자취를 하다 또, '아는 언니'의 소개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나중엔 '아는 언니'와 동업으로 카페를 차렸으니 '아는 언니'는 미연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연의 '아는 언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 '아는 언니'가 그때의 그 '아는 언니'인지, 아니면 또다른 '아는 언니'인지 늘 헷갈리곤 했다. (р.43)  


 Пока Охамма в очередной раз сидел в тюрьме, дом покинула Миён. Она окончила училище, некоторое время проработала в небольшой компании, торгующей водоочистителями, а потом через «знакомую» устроилась в торговую фирму и ушла из дома, сославшись на то, что оттуда далеко ездить на работу, и сняла со «знакомой» маленькую квартирку. В жизни Миён частенько появлялись такие «знакомые». Она устроилась на работу через «знакомую», снимала жильё со «знакомой», «знакомая» познакомила Миён с её будущим мужем, потом они вместе со «знакомой» открыли кафе. Такие «знакомые» обязательно появлялись в важные моменты жизни Миён. За всё время я ни разу не видел этих её «знакомых» и путал, кто и когда из них появил-

ся в её жизни.


 한국에서 언니, 오빠는 나이만 많은 것이 아니라, 언니 혹은 오빠라면 밥도 자주 사주고, 책도 사주고, '고령화 가족'에서처럼 취직도 시켜주고, 함께 자취도 하는 등등 혈연 관계는 아니어도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모든 '아는 언니' 혹은 '아는 오빠'들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순진한 후배들을 꼬드겨서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다행이도 '고령화 가족'에 등장하는 미연을 도운 '아는 언니'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미연을 도와준 건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니라, 미연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러시아어로는 'знакомая, которая старше Миён'(미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지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했을 때, 원문이 가진 '아는 언니', 즉,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후배들이 인생에서 첫 발을 내딛는 데 지대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표현해줄 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연장자들이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반면, 러시아에는 친구들끼리 서로 돕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어에서의 '친구'란 반드시 동갑일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아는 언니'는 러시아어로는 '아는 여자', 즉,'여성인 지인'으로 번역이 되어집니다. 


 ''고령화 가족''의 서평 ... 

''고령화 가족''의 서평이 궁금하던 차에 연세대학교에서 한국학 협동과정 박사 학위를 받고, 러시아 신문 러시아 포커스에도 정기적으로 기사를 쓰는 마리야 오세트로바씨가 쓴 서평을 읽게 되었습니다. 

 마리야씨는 고령화 가족이 험한 욕이나, 슬랭, 그리고, 생리적인 현상에 대한 묘사가 많았지만, 번역은 자연스럽고, 어휘 선택에 있어서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고 합니다. Каннам 대신 ''Фешенебельный район''라고 표기하며, 역자가 러시아 독자들이 모를 수 있는 지명 혹은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쓰기 보다는 묘사하는 방식을 택했다거나, тубу-чиге대신,  суп из соевого творога, самгетхан대신, суп из цыплёнка с женьшенем이라고 표기하는 등 모든 음식 명은 한국어 명칭을 그대로 적는 대신 설명을 했습니다. 김치의 경우는 예외로 кимчи라고 표기하는 대신, 각주를 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고령화 가족''을 가볍지만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저희의 번역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한 셈입니다. 

 서평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러시아 독자들은 역자인 저희들을 통해 한국 문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역자인 저희들의 손 끝에 천명관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려있다는 점을 새삼 가슴 깊이 새기는 중요하고도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번역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는 전문가들에 의해 작성된 번역 지원 대상 목록이 있습니다. 물론, 한국 내에서 상당한 인지도 혹은 인기를 얻고,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은 훌륭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각 나라는 상이한 문화, 역사, 전통을 갖고 있기에, 한국 내 독자들의 기호가 러시아 독자들의 기호와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이러한 예에 해당합니다. 그의 영화가 한국에서는 큰 호응을 못 받고 있지만, 러시아나 유럽에서는 상당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번역 대상 작품과 작가 선정에 있어서 우리 나라에서 인기 있고, 문학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가시권에 두는 것보다는 러시아 독자들의 정서와 취향을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2] 라는 의견이 상당히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은 1990년대 이전까지는 전무하였습니다. 1990년 이후 한국문예진흥원의 지원으로 ''한국현대소설선''(1994), ''한국단편소설선''(1995), ''한국민담집''(1999), 정현종 시선집 ''환합니다''(2000) 등 4종의 번역서가 러시아에서 출판되었고, 1995년 지금의 한국문학번역원이 개원하면서, 한국문학의 세계 언어로의 번역이 비로소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정부 차원에서 한국 문학 번역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문학이 러시아에 많이 소개가 되지 않은 지금 러시아 독자들의 독서 성향을 분석하기란 아직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 내 한국 문학 작품의 낮은 인지도로 인해 현지 출판사들은 출판을 꺼리고, 출판 계약을 맺는다 해도 1000부를 1쇄때 찍어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출판사에서는 재고로 남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실정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러시아 출판 시장을 온몸으로 느끼는 이들은 바로 현지 출판사들입니다. 따라서 역자들은 작품을 번역하기에 앞서 출판사의 편집장 혹은 대표들과 책의 내용 혹은 주제 등에 대해 먼저 상의를 하고 나서 번역 지원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즉, 실패할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 하고 재고로 남을) 확률이 많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모스크바에 있는 '나탈리스'의 대표와 긴밀하게 연락하고, 작품에 대해 상의를 하면서, 번역 작품의 방향성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훌륭한 번역을 위한 조건


훌륭한 번역을 위해 역자는 먼저 원문을 충실하게 읽고, 문학 비평을 읽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저자와 번역가가 서로 자주 만나서 작품 번역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의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서울 문학회'라는 행사를 통해 작가 이기호 선생님과 황선미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기호 선생님은 400페이지 분량의 작품을 썼다가 그 중에 100페이지만 남긴 적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즉, 지나치게 친절한 작품은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빼앗아간다고 판단하셨고, 과감하게 300페이지 분량을 덜어냈다는 것입니다. '생각할 여지'란 독자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역자는 작가가 생략하신 부분을 최대한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역자가 저자의 깊은 뜻을 알고 번역하는 것과, 모르고 번역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200만부 이상의 독자를 감동시킨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 선생님은  이와 관련하여 저자와 독자는 개인적으로도 친밀하게 만나서 번역과 책에 대해 상의도 하고, 의논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역자는 특정 작가의 소설을 번역할 때 작가와 최소 몇 번 정도는 만나서 소설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들은 내용을 최대한 작가가 원하는 만큼의 선에서 번역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와 만나는 일은 역자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저는 번역원 측에 저자와 역자와의 만남을 적극 주선해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한국문학번역원에 예비 번역가 양성 과정은 체계를 잡았고, 시스템화 되어 있지만, 번역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지명이나 음식명 등의 표기도 통일시키고, 번역가들이 함께 번역을 할 때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자리도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1]

Кимчи – квашеные овощи, часто в остром соусе из красного перца. 

[2]

''한국 문학의 외국어 번역’’,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p.175 



작가의 이전글 제15회 번역상 수상 소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