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날이 좋아서 우리 세 식구가 정말 오랜만에 (‘오랜만에’라는 단어는 정말 이럴 때 쓰라고 아껴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식구가 다 같이 마트에 가는 것 외에 ‘산책’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은 작년 하반기에 한 것이 사실상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산책을 나갔다. 오래간만에 포근한 날씨에 마음만큼 옷차림도 가볍게 우리 셋은 사뿐사뿐 공원 이곳저곳에서 날 수도 있는 향기, 색깔, 사람들의 흔적 등을 쫓느라 정신없이 걸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떠는 기분이랄까…
사실 나는 우리 집 앞 공원은 공사를 하는 모습만 봤지, 실제로 그 안에 들어와 본 건 처음이었다. 내가 공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사실 얼마든지 많았다. 원고 마감이 코앞도 아니라 코 밑이어서, 피곤해서, 약속이 있어서, 백화점에 가고 싶어서 등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새 단장을 한 공원은 내 생활에서 최소 10위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공원은 보란 듯이 예뻐졌다. 없던 무대도 생기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포토 존도 있고,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고만고만한 공간이나마 꽤 아기자기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가 우리 집 앞에 생긴 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우리 셋은 공원을 둘러보고, 공원에서 조금 더 떨어진 옆 동네 공원까지 가서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탔다. 가면서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농담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진지한 대화보다는 이렇게 연기처럼 가볍고, 농담처럼 의미 없는 대화로 인해 우리 삶이 더 여유로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한 후에 제과점에 들러서 각자 먹고 싶은 빵을 사고, 야채 가게에 들러서 야채와 과일을 샀다. 하지만, 그 가게에는 딸아이가 원하는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우리는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도 들른다. 슈퍼마켓에 가서는 배추와 매운 고추, 오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이스크림을 집어 든다. 그런데 문득 내 눈길이 처음 보는 캐러멜 맛 팝콘에서 멈춘다. 나는 속으로 ‘신제품이네?’라고 생각했고, 이 물음에는 ‘무조건 먹어야지’라는 결심이 섞여있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을 사고 집으로 향한다. 이때 딸아이의 머릿속에는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어떻게 하면 아이스크림을 빨리 먹을 수 있을까?’,’ 아이스크림은 누가 들고 있을까?’, ‘엄마일까? 아빠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스크림이 들어가 있을 법한 봉지를 탐색한다. 아빠가 든 비닐봉지의 탐색을 끝낸 딸은 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엄마인 내가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에게 다가온다. 아니, 나를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아마 날개가 있었다면 주저 없이 날아왔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스크림은 아빠보다 한참 앞선 엄마가 들고 있다. 그렇다면 아빠가 아이스크림이 든 봉지를 들고 있을 때보다는 더 빨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딸은 이미 내 옆에 바짝 붙어있다. 나보다 더 빨리 달리려 해 보지만, 그래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자기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아이스크림이 든 봉지는 엄마인 내가 들고 있기 때문이다.
''윤미야, 네가 빨리 달려봐야 소용없어. 봉지는 내가 들고 있는걸?''
''아이스크림 빨리 먹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게 뭔데요?''
''네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엄마보다 빨리 뛰어가는 거지. 하지만, 너무 빨리 뛰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너는 아이스크림 바를 컵이나 접시에 담아서 스푼으로 퍼먹어야 할 거야.''
'네, 알았어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는 벌써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겨울이라는 이유로, 코로나라는 이유로 아이스크림을 한동안 멀리 했고, 특별할 것 없는 아이스크림이지만,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 것 같았다.
이 경우는 다행히 딸이 원하는 대로 좀 더 빨리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꽤 자주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과 자주 마주한다. 물고기가 걸을 수 없고, 사람이 날 수 없으며, 나비와 인간이 인간이 쓰는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우리는 꽤 자주 다양한 한계를 겪으면서 산다.
나의 경우는 손재주가 거의 없다. 바느질, 뜨개질, 만들기 등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잘 못한다. 그런 내가 어린 딸에게 형형색색 부직포로 다양한 물고기를 만들어서 낚시 놀이를 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사실하지 말았어야 옳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인터넷에 손재주 좋은 누군가가 만드는 법을 올려놓은 것의 결과만 대충 훑어보고는 다양한 색상의 부직포를 샀다. 그리고 부직포를 집에 사들고 와서야 나는 비로소 블로거가 올려놓은 부직포로 물고기 만드는 법을 살펴본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이건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 때 바느질 과제를 하는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게 된다. 당시에는 가정 시간 과제가 집에서 바느질로 ‘저고리 만들어 오기’ 같은 것이었다. 바느질을 포함한 그 어떤 종류의 손재주도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나는 엄마한테 저고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엄마가 만들어주신 저고리를 들고 갈 때만 해도 어깨에 힘이 평소보다는 조금 더 들어갔었다. 하지만, 점수는 A도 아니고, B도 아니고, C였다. 엄마에게 만들어달라고 할 때의 내 기대치는 못 받아도 B는 받을 줄 알았다. 아마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재능이나 손재주 따위는 없다고 믿어버린 시점 말이다.
솔직히 운동도 잘 못한다. 중3 졸업할 때 즈음 체력장을 앞두고 아빠와 함께 체력장에 있는 다양한 종목을 연습하러 운동장에 간 적이 있다. 아빠는 공을 주시고는 한 번 던져보라고 하셨다. 나는 아빠가 하라는 대로 공을 던졌고, 아빠는 바로 ‘집에 가자.’라는 한 마디로 나를 포기시키셨다. 이유인즉슨 내가 공을 뒤로 던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그 순간 ‘이건 절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으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을 ‘내가 잘하는 것’, ‘노력하면 할 수도 있는 것’, ‘다시 태어나야만 할 수 있는 것’ 등을 분류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는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