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체호프, 톨스토이...
과거에 양귀자 선생님의 ‘모순’을 번역해보겠다고 열심히 번역해서 한국문학번역원에 번역 지원 신청을 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진 적이 있다. 심지어 그때 양귀자 선생님이 엽서까지 써서 보내주셨는데, 하필 결과가 그렇게 돼서 마음이 안 좋았다. 그 이후로 어찌어찌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행복해 보이던 이모가 자살하고, 누가 봐도 세상에 있는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잔뜩 짊어진 것 같던 주인공의 엄마는 억척같이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삶을 살아갈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망나니 같은 주인공의 아빠이다.
우리의 삶은 이토록 알 듯 말듯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딸을 혼내는 엄마의 말속에도 모순은 그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다.
''Y야, 너 왜 공부했다고 하고 거짓말했어? 그것도 아빠한테는 사진까지 찍어서 보냈다면서?’’
''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네가 공부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확인해보면 금방 알아. 엄마랑 아빠가 확인해보고 안 한 게 들통나면 더 많이 혼나는 거 알잖아. 그리고, 친구들이랑 있을 때도 거짓말하면 친구들이 너 싫어할지도 몰라. 넌 거짓말하는 친구 좋아?’’
''아니요. 저도 싫어요.’’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 이유나 좀 알자. 당장 공부하기 싫어서?’’
''네. 그런 것 같아요.’’
''아니, 수도 없이 말했는데, 그걸 까먹는 건 아닐 거고… 거짓말하는 건 나쁜 거야. 네가 만약에 위험에 처하지도 않았는데, 엄마한테 전화해서 누가 너를 쫓아온다고 한다고 생각해봐.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세 번까지는 속아도 네 번째는 네가 또 거짓말하는 줄 알고 도울 생각조차 안 할 거란 말이야.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누가 너를 쫓아오는 거야. 그럼 어떡해?’’
''네, 무서워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세상 사람들이 다 널 못 믿어도 엄마, 아빠는 널 믿을 수 있어야 해. 그래야 이 험한 세상 살지. 그런데 너 설마 친구들이 공부 안 한다고 하는 말 믿고 공부 안 하는 건 아니지?’’
이 부분에서였던 것 같다. 내 말이 앞뒤가 안 맞는데도 꾸역꾸역 앞뒤를 맞추려고 한 것 말이다.
''친구들이 공부 하나도 안 한다고 하는 말 절대 믿으면 안 돼.’’
이 말을 하면서도 나는 과연 이 말이 설득력이 있는지 보다는 이 상반된 논리를 아이가 이해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름대로 논리적이라고 꾸역꾸역 우겨보는 것이다.
''친구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집에서 공부 엄청 하는 거야. 그리고는 너한테는 공부 하나도 안 한다고 거짓말하는 거야.’’
아뿔싸!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쁘다. 거짓말하는 아이는 친구들이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안 하는 ‘나’만 바보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들처럼 거짓말을 시기적절하게 해야 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친구들이 딸에게 공부 많이 하고서 ‘나 공부 하나도 안 했어’라고 말한다면, 딸은 이 말을 ‘아, 공부 좀 했구나’라고 이해한 뒤, ‘안 되겠어. 나도 공부해야지.’라는 결심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나쁘지만,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모두 믿어서도 안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은 서로 속고 속이는 거짓으로 얼룩진 것인데, 그래도 큰 문제없이 서로 잘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약간의 거짓말은 오히려 삶이라는 바퀴가 돌아가는 데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자가당착에 빠진 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논리 속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결국 나는 ‘그래, 공부를 안 하고 했다고 하는 거짓말 정도는 세상에 있는 수없이 많은 끔찍한 거짓말에 비하면 양반이지. 이게 뭐라고 애를 잡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문득 ‘거짓말’의 사전적인 의미가 궁금해서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국어사전에서는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어 말하는 것을 뜻한다. 러시아어 사전에서는 거짓말을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실 거짓말이 모두 나쁜 건 아니다. 세상에는 좋은 의도로 하는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거짓말이 하얀지 초록색인지는 또 누가 정한단 말인가? 당시에는 하얗다고 생각됐던 거짓말이 지나고 보면 시커멓거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밝혀질 수도 있다. 그것이 개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에서 발생한 거짓말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이 일이 국가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이를테면, 매일 지각하는 학생이 친구에게 ''나 내일은 절대 안 늦어''라고 하고 늦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한 걸까? 만약 그가 이 말을 하고 늦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말을 하고, 평소보다 알람 시계를 침대 머리맡에 많이 갖다 놓고, 10분마다 울리도록 하는 등의 노력은 했지만, 결국 늦었다면 그의 말과 행동에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에 굉장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사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나 역시 다이어트에 무척 관심이 많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살은 빼고 싶지만, 먹는 것은 포기할 수 없으니 음식 양을 조절하지 않고도 살을 빼는 방법을 찾는다.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매력적인 쪽은 역시 무언가를 먹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몽과 오렌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식사량을 줄이지 않는 것도 모자라 자몽과 오렌지를 같이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것이다. 음... 음식이 몸속으로 들어가 소화라는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전의 질량과 몸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질량이 같다면 식사 외에 오렌지와 자몽까지 먹으면 살이 더 찌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살이 쪘다면, 나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살이 빠졌다면 다행히 모순된 상황은 피하게 된다. 만약 오렌지와 자몽을 같이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이론을 펼친 의학자가 있는데,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그러니까 거짓말과 모순이라는 이 두 가지는 사실상 매우 흡사하며, 그러기 때문에 의외로 경계가 모호하다.
순간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얼마나 많은 침묵을 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지, 혹은 '거짓말은 나쁜 것이다'라는 원칙을 굽히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사실만을 얘기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
체호프는 '거짓말은 알코올 중독과도 같다. 거짓말을 늘 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을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톨스토이는 '' 우리는 대부분 남을 속이려는 바람보다는 자기 자신을 기만하려는 바람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의 삶은 거짓과 모순 속에서 유영할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거짓말을 하는 이유 정도는 생각하지 않을까... 내 몫의 삶에서 하루하루가 줄어들수록, 내가 조금씩 더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깨닫는 것은 세상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머리는 커졌고, 똑똑해졌다고 생각하는 모순된 자아와 마주하게 된다. 내 삶도 나도 모두 모순인 셈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모순 덕분에 우리는 고민하고, 생각하고 발전하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이 새삼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깨닫는다. 내 속에 거짓과 모순이 많다면 그런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