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빵 이야기

나비 효과?

by 승주연



그리운 러시아


사실 나는 빵을 무척 좋아한다. 러시아에서 3년이나 유학을 했고, 넉넉한 유학 생활이었다면 다양한 디저트를 먹으면서 여유롭고 즐거운 유학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내가 유학을 떠날 때 우리 집은 월세를 살고 있었고, 내가 우리 집 월세 보증금의 10배 정도 되는 돈을 들여서 그것도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였으며, 어쩌면 그보다 더 몹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학 생활 내내 나는 늘 돈에 쪼들렸고, 그렇다 보니 내가 누릴 수 있는 내 나름의 사치라면 흰 빵이나 흑빵을 사서 버터를 덕지덕지 발라먹는 정도였다. 게다가 러시아는 유제품이 다양하고 맛있어서 그곳에서 먹은 유지방 80%짜리 프랑스산 버터, 쫀득쫀득하고 흘러내리는듯한 치즈는 지금도 그립다.


무엇을 이해할 것인가?


러시아 문학에서 크게 화두가 된 두 가지 물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와 ‘누구의 잘못인가?’이다. 사실 세상에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고, 지구 상에 벌어지는 기이한 일은 차고도 넘친다. 학문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삶은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나 현상들이 훨씬 더 많다.


이를 테면 관성의 법칙만 보더라도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달리고 있는 물체는 계속 달리고 싶어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그대로 머물러있으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법칙이 있다는 것은 알고, 머리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지만, 이제는 뼈 속까지 문과가 돼버린 나는 솔직히 와 닿지 않는다.


화학반응의 전후에서 반응물질의 전질량과 생성물질의 전질량은 같다고 하는 질량 보존의 법칙만 하더라도 머리로는 이해할지 몰라도 마음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유발한다는 ‘나비 효과’는 그래도 그보다는 조금 더 와 닿는 것 같다. 얼핏 봤을 때 별 것 아닌 것 같은 나비의 날갯짓 따위가 폭풍우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뭔가 그럴듯하고, 나도 모르게 ‘그럴 수 있어’,라고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아시아를 벗어나서 전 세계 혹은 우주까지 적용할 수 있는 현상들은 나와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학계에서 말하는 이러한 현상이나 법칙들로 인해 내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빵 이야기


오늘 조금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최근 들어서 집에 다양한 빵이 많이 생겼고, 나는 이 빵들도 물론 맛있지만, 조금 다른 빵도 먹고 싶다는 취지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요즘 먹고 싶은 빵이 하나 있는데.''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집에 있는 빵 다 먹고 사. 안 그럼 당신 빵에 넣어줄 거야.''

나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설마 ‘빵’이 ‘감빵’?’’

''어, 라임이 맞잖아. 빵은 먹는 빵일 수도 있고, 감빵일수도 있지.''

''어떻게 그걸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너무 다른 빵이잖아.''


솔직히 ‘’ 빵’’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대화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은 그냥 라임도 맞고, 농담을 농담으로 알고 넘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감빵이란 단어와 연상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예능은 예능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번역한 소설에서 누군가가 ‘’ 집이나 확 불타버려라’’라고 악담을 하고 나서 정말로 그 집이 불타버린 일이 있었다. 내가 번역한 다른 소설에서도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향해 퍼부은 악담으로 인해 그 사람이 정말로 안 좋은 일을 겪었다. 말도 안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이지만, 나는 그래도 말은 ‘씨가 된다’라는 단순한 교훈을 덕분에 어쩌면 쓸데없이 얻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남편과 말다툼을 했고, 다음 날 나는 전날 남편에게 화를 낸 나 자신과 남편이 한 농담을 이해하고(?) 싶어 졌다. 관성의 법칙이나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나비 효과’를 이해하는 정도로라도 납득이라는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은 지인 찬스였다. 남편도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나도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남편이 물어본 지인들은 누가 봐도 그냥 농담이고,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내가 이해 안 간다는 거였다. 나도 질세라 내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아래는 지인들과 내가 나눈 카톡 내용을 조금 각색한 것이다.


''다들 잘 지내시죠?''-나

''어, 주연. 좋은 아침!''-지인 1

''잘 지내죠?’’-지인 2

''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나

''뭔데요?’’-지인 2

''남편이랑 …. 한 상황에서 남편이 …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솔직히 그 상황에서 감빵이 연상되는 ‘빵’을 쓴다는 게 이해가 안 가서요.''-나

''글쎄, 그냥 재미 삼아한 것 같은데요?’’ -지인 2

''슬기로운 감빵 생활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지인 1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나

''글쎄, 그냥 남자들 그렇게 농담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비일비재해서.’’ -지인 2

''아, 그렇군요… ㅜㅜ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요.’’ -나


톡으로 주고받은 대화에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나는 친구 찬스를 쓰기로 결심했다.


''잘 지내지?’’-나

''응, 나야 뭐 늘 똑같지. 넌 많이 바쁘지?’’ -친구

''그래도 많이 바쁜 건 지나갔어.’’-나

''그렇구나.’’-친구

''나 뭐 궁금한 게 있어서. 남편이랑 … 대화를 하던 중에 남편이 …라고 말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난 솔직히 기분이 안 좋았거든.’’ -나

''ㅋㅋㅋㅋㅋ 글쎄, 그냥 웃자고 한 얘기 같은데?’’ -친구

''정말? 그런 거야?’’-나

''우리 남편도 말을 예쁘게 안 할 때가 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해.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고 나서 정 걸리면 나중에 분위기 좋을 때 잘 얘기하면 어떨까?’’-친구

''알았어. 고마워.’’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내 편이 한 명은 있겠거니 싶은 생각과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학생 찬스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들 잘 지내죠?’’ -나

''네, 선생님!’’-학생 1

''네!’’ -학생 2

''나 뭐 하나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나

''뭔데요, 선생님?’’ -학생 1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랑 이런 대화가 오고 갔는데, 제가 좀 기분이 안 좋았어요.’’

''어떤 것 때문에 화가 나신 거예요? 다른 빵 못 드시게 해서요?’’-학생 1

''헉 ㅋㅋㅋㅋ ‘’-나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정말 내가 화가 난 포인트는 ‘감빵’을 의미할 수도 있는 ‘빵’ 때문이 아니라, 다른 빵을 못 먹게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다음에도 학생의 천진난만하고 유쾌한 톡은 이어졌다.

''저는 어디서 화가 났을지 잘 몰라서요. 빵 좋아하시는데 빵 못 먹게 해서 기분 상하신줄.’’ -학생 1

''ㅋㅋㅋㅋㅋㅋ 헉’’ -나


솔직히 내 편이 한 명은 있을 줄 알고 지인 찬스를 쓴 것인데, 질문을 하면 할수록 내가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결론에 점점 더 마침표를 찍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상실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남편도 나도 둘 다 한 번씩 호탕하게 웃고 넘길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아닌 빵이 마치 나비 효과처럼 이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인지도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은 어쩌면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정말 단지 단순히 다른 빵이 먹어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나도 모르는 내 속내를 들킨지도 모르지만, 유쾌한 해답을 준 학생에게 새삼 고마워진다.

IMGP079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물과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