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를 도대체 몇 개나 쓰는 거야?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음식 할 일이 많다. 물론 번역도 많이 해서 작년 한 해만 5권을 번역했고, 1월 초에 작년의 마지막 역서 완역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다소 홀가분하지만 뭔가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하루에 거의 5-6페이지씩 쉬지 않고 번역을 했던 탓일까… 뭔가 재충전하는 시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다음 주 초에 출판사 편집부에서 원고를 다시 보낼 거고, 그러면 그 원고를 또 1주일 동안 검토해야 할 테니까.
아무튼, 집에 있으면서 음식을 할 일도 많지만, 그래서 늘 뭘 먹을지가 고민이다. 세 사람이 살지만 메뉴 통일을 포기한 지는 꽤 됐기 때문에 세 사람(나도 까다로운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은 없다)이 원하는 음식을 모두 시기적절하게 만들 재료가 들어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오늘 저녁에는 뭔가 살짝 느끼한 게 당기는 데다 귀차니즘까지 보태져서 버터를 무려 2개나 넣은 와플을 만들어 먹고 싶어 졌다.
나: Y야, 와플 안 먹을래?
딸: 이 쿠션 저한테 주시면 와플 먹을게요.
딸은 매사에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계약서 쓰는 걸 부쩍 좋아해서 집에서 운동 좀 하랬더니 계약서를 5-6개를 써와서는 나더러 서명을 하라고 했다.
딸: 엄마, 제가 운동하다가 엄마 이름을 실수로 불러도 혼내지 않겠다고 여기에다가 서명하세요.
나: 알았어.
딸: 엄마, 운동 중에 실수로 때릴 경우 혼내지 않는다고 여기에 서명하세요.
나: 알았어. 자, 받아.
이렇게 몇 차례 계약서가 오가고 난 후에야 녀석은 운동을 시작했다.
아무튼 누굴 닮았는지 (계약서 부분은 아무래도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뜨끔하다) 녀석은 허구한 날 거래를 하거나 계약서를 쓰려 들었다.
나: 너 하나, 나 하나 이렇게 두 개 구울 거야.
딸: 와플 반죽에 아예 초코 시럽을 넣어서 해주시면 안 돼요?
나: 안돼. 그럼, 타버릴 거야. 초코 시럽은 와플이 다 만들어진 후에 뿌려 먹어.
딸: 그럼, 와플이 다 만들어진 후에 와플 한 면에 초코시럽을 바르고 나머지 와플을 겹쳐서 저 다 먹으면 안 돼요?
나: 안돼. 잘 들어. 와플은 총 두 개, 너 하나 나 하나. 이렇게 먹을 거야.
딸: 왜 저 두 개 먹으면 안 돼요?
나: 와플 하나 굽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니까. 그리고, 너무 많이 먹으면 배가 아야 아야 할 거야.
딸: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결국 우리는 와플 하나씩 각자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먹었다. 나는 버터를 듬뿍 올려서 먹었고, 딸은 초코 시럽을 듬뿍 뿌려서 먹었다.
지금부터 남편이 오기 전까지는 ‘냉동 인간’에 대한 책을 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