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말해주세요.
솔직히 국어가 싫어서 고등학교 때 이과에서 공부했는데, 독일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러시아어과에 교차 지원했던 내가 지금 현재 러시아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세계 3대 미스터리까지는 아니어도 내 인생 3대 미스터리 정도까지는 될 것 같다. 그런 내가 영화를 볼 때 상황을 이해 못 해서 남편한테 숨겨진 문맥을 자꾸 물어보는 상황은 또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와 남편은 응답하라 1994를 보고 있다. 성동일과 이일화가 서로 은밀한 눈빛을 교환하고 딸에게 맥주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남편에게 묻는다.
나: 저 두 사람은 왜 저렇게 눈빛을 교환하지?
남편: 몰라?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 응. 아… 부인이 남편한테 심부름을 시켰는데, 남편이 자기가 가기 싫어서 마침 집에 있는 딸한테 시킨다
는 뭐 그런 싸인인가? ‘쟤 시키면 되겠네? 그렇지?’ 뭐 그런 싸인?
남편: 그게 아니라, 딸 보내고 좋은 시간 갖겠다는 의미잖아.
나: 그게 그렇게 해석이 되는 건가? 와… 당신은 그걸 어떻게 이해하지?
남편: 분명 같은 드라마, 같은 장면을 보고 있는데, 그게 이해가 안 돼?
나: 난 정말 영혼이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가 봐.
남편: 아니. 그냥 이해력이 떨어지거나, 눈치가 없는 거야.
나: 아… 쩝… 앞으로 배울 게 태산이네… 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자세하게 말하는 대신 묘한 눈빛을 교환하는 거야? 사람 헷갈리게.
남편: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할 거거든?
나: 아… 쩝… 나 아직 한참 커야 하나 봐.
또 한 번은 대학교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늘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비슷한 시간에 다른 과 선배와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우연의 일치 외에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고, 어쩌면 찾으려는 노력조차 안 했는지도 모른다. 한 번, 두 번, 10번, … 이렇게 마주치는 동안 나는 그냥 우연치고는 정말 신기하다고만 생각했고, 그 우연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 그러니까 자세히 말해줘야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사인이나, 손짓이나, 눈빛 교환 따위는 의미 없는 제스처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그날도 나는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선배와 마주쳤다.
나: 오~ 선배! 오늘도 보내요! 와~ 신기하다.
선배:오~ 주연아! 그러게… 신기하네?
나: 그러니까요! 어쩜 이렇게 자주 보죠?
선배: 그런데 넌 정말 이게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하니?
나: 네! 그럼, 아니에요?
선배: 너 정말 눈치가 없구나.
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배: 내가 너 기다린 거야. 보고 싶어서…
나: 그럼, 말씀을 하시지…
선배: 그걸 꼭 말해야 아니?
나: 네! 안 그러면 어떻게 알아요?
뭐 늘 이런 식이다.
'유모가 7명이면, 아이가 한 쪽 눈을 잃을 수도 있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우리 말에 있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에 준하는 의미를 갖지만, 표면적인 의미는 더 섬뜩하다.
우리 말에도 있고, 러시아어에도 있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우리 말과 달리 러시아어에서 이 표현은 ‘굉장히 바쁘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우리는 같은 상황을 봐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하며, 어쩌면 그래서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 #눈빛 #추억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