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탕

곤충 가공 식품

by 승주연



남편은 번데기를 좋아한다. 나도 어렸을 때는 번데기를 꽤 자주 먹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번데기가 벌레라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고 나서는 살짝 징그러워졌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번데기를 끓여서 쭈글쭈글해지기 전의 녀석이 파릇파릇한 애벌레일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죄책감은 아닐 것이다. 덩치가 큰 녀석이고, 심지어 내가 꽤 오랫동안 키우던 동물이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졌겠지만, 내가 아니어도 천적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먹힐 수 있는 불운을 타고난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죄책감은 조금 무거워 보인다고 할까?


마트에서 번데기 통조림을 사 온 남편은 내게 번데기탕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 여보, 당신 라면 다 먹었으면 나 번데기탕 끓여줘.


나: 번데기탕?


남편: 아까 라면 먹고 나서 해준다고 했잖아.


나: 내가? 진짜? 나 피곤한데.


남편: 설거지랑은 내가 다 할게.


나: 설거지는 할 생각도 안 했는데.


남편: 그러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 거니까, 당신은 번데기탕만 끓여주면 돼.


나: 알았어.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번데기는 애벌렌가?


남편: 글쎄. 그런데, 그걸 지금 왜 말하는데?


나: 그냥, 궁금해서. 성충은 아닌 거지?


남편: 응. 그러니까 빨리 해줘.


나: 여보, 번데기 통조림 국물도 넣는 건가?


남편: 넣어야지.


나: 파 넣으면 되나?


남편: 응.


나: 당신이 끓이지. 난 번데기탕이 어떤 맛인지 몰라.


남편: 당신은 음식을 잘하니까 맛있게 끓일 거야.


나: (휘휘 저으면서 심히 의심스럽다는 투로) 진짜 이렇게 만들면 되나?


남편: 맛있을 거야.


나: 어떤 맛인지 궁금하긴 한데.


남편: 그럼 먹어보던가.


나: 아니, 괜찮아. 알 것 같기도 해.


남편: (한 숟가락 떠먹어보더니) 음, 맛있다.


나: 다행이네. 어떤 맛인지 궁금하지만, 번데기한테 미안해서 참을래.


간도 안 보고 대충 생각한 재료로 맛을 낸 번데기탕이었지만, 남편은 맛있게 먹었다. 음식의 맛에 대한 평가는 직선적으로 하는 남편이기 때문에 맛이 없었다면 최소한 '맛이 좀 그렇다' 정도는 말했을 것이므로, 정말 맛있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내 손에는 음식의 간을 느끼는 촉수 같은 것이 달려있는 것 같다.


#곤충가공식품 #번데기 #번데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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