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로브스키 볼펜!
그림
코로나 때문에 딸은 지난 1년 동안 거의 집에 있었지만, 그런 딸에게도 방학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는 나대로 집에서 번역과 온라인 수업으로 눈 코만 간신히 뜨고 살고 있고, 딸은 밀크티나 온라인 영어 수업을 듣는 등 적당히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밥도 같이 먹고, 짬이 나면 같이 농담 따먹기 같은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편이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림을 그리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남편이 나한테 카톡을 보냈다.
남편: 여보, 윤미 그림 좀 그리라고 해요~
나: 갑자기 그림은 왜요?
남편: 그림을 그리면 머리가 좋아진대.
나: 아… 그런데 무슨 그림?
남편: 나무나 풍경 같은 거…
나: 알았어요. 얘기해볼게요.
남편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 후 나는 곧바로 (늘 집에 같이 있으면 얘기하고 싶을 땐 언제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딸에게 말했다.
나: Y야, 아빠가 그림 좀 그리래.
딸: 갑자기 그림은 왜요?
나: 그림 그리면 머리가 좋아진대.
딸: 그럼 제 머리가 나쁘단 뜻이에요?
나: (끄응^^;;; ) 아니, 더 좋아진다고.
딸: 엄마 갈색 볼펜 주시면 할게요.
얼른 내 방에 가서 갈색 볼펜 한 자루쯤 희생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듯 갈색 볼펜을 딸에게 건넨다.
나: 자, 여기. 너 가져.
딸: 오~~~ (딸은 어느새 내 필통 안에서 스와로브스키 볼펜을 발견하고는) 저 이거 주세요!
나: 그냥 그리지 마!!!
딸: 농담이에요!
*사진은 딸이 아니라 내가 무척 좋아하는 러시아 캐릭터 인형 '체부라시카'이다. 남편이 밖에 버린다고 하는 걸 내 방에 버리라고 해서 지금까지 내 방 책장 한편에 앉아있다. 늘 웃고 있는 이 녀석을 보노라면 문득 부러운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