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모험

대화

by 승주연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중에 공역자이자 절친인 싸샤 언니한테서 왓츠앱으로 메시지가 왔다.


공역자: 주연, 잘 지내지? A라는 사람한테서 이메일이 왔는데, 너도 받았지? 내 몫까지 네가 회신해줄 거지? 내가 보니까 무슨 새로운 지원 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작년 데이터가 있을 테니까 새로 서류를 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나: 언니, 거기 번역원 아니야. 페이도 상당히 낮은 편이야.


공역자: 무슨 말이야? 그런데 내 이메일을 어떻게 안 거야?


나: 작년에 그쪽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거냐고 물어보길래 언니랑 같이 한다고 얘기했고, 서류도 냈어. 그때 언니도 동의했고.


공역자: 아, 이제 생각났어! 맞아. 다들 건강하지? 남편과 나는 백신을 맞았어. 1주일 후에 피검사하고,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마스크 벗고 입술에 예쁜 립스틱 바르고 밖에 나갈 거야!


나: 부러워! 우리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아… 아무튼 그 이메일은 신경 쓰지 마.


공역자: 아직 백신 안 맞는다고? 러시아에서는 벌써 많이 맞았는데. 이메일은 그럼 신경 안 쓸게. 나는 번역원에서 온 메일인 줄 알았어. 너 지금 혹시 바쁜 거야? 안 좋은 일 있는 건 아니지?


언니와 나는 벌써 20년째 알고 지내기 때문에 대화를 하면 내 기분이 어떤지, 혹은 평소와 다른 것을 빨리 알아차리는 편이다.


나: 아니, 그냥 나 지금 차 타고 집에 가는 중인데 화장실에 좀 가고 싶을 뿐이야.


공역자: 아… 그럼 참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배 언저리에서 약간의 이물감 혹은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 말이다. 언니와 대화를 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배 속에서는 배 속에 들어간 노폐물이 배 언저리에 걸려서 배 아래쪽으로 자꾸 내려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걸 배가 겨우겨우 붙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마치 서로 다투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한 명을 간절히 응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 뱃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내 몸 밖에서, 그것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데, 그중 나는 ‘배’라는 사람을 간절히 응원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와중에 택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노폐물’ 쪽에 힘을 더 실어주고 있었다.


물론 나는 무사히 내가 원하는 곳까지 잘 도착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미끄러질뻔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가정법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하는 나는 만약 볼 일을 보기 전에, 그러니까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미끄러지거나 미끄러질 뻔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봤다. 그리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일은 물론 나와 내 뱃속만이 아는 사실이었고,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찔한 기억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지만 아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걸어서 집에 가면서 나는 ‘정말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생각하며 혼자 미소를 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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