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고 너구리 짜식
딸이 모동숲에 나오는 너구리 캐릭터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딸: 엄마, 너구리 새끼 좀 보세요.
나: 헉, 새끼는 좀 욕 같잖아. 예를 들면, ‘이놈의 너구리 새끼 집에 오면 가만 안 두겠어.’라든지, ‘이놈의 너구
리 새끼가 이번에도 돈을 안 갚았어.’같이 뭔가 화가 났을 때 하는 말 같잖아. 만약 ‘새끼 너구리’라면 ‘너구리의 새끼’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너구리가 작다면 ‘작은 너구리’, ‘너구리가 작아서 귀여워요.’ 같이 표현하면 좀 좋아?
딸: 그럼, 너구리 자식 좀 보세요.
나: 하아… 너구리 자식도 좀 … 거친 감이 있어. 이건 어때? 너구리 짜식.
딸: 너구리 자식이랑 너구리 짜식이랑 차이가 뭐예요?
나: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내가 너구리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너구리 짜식 많이 컸어.’’라는 말을 애정을 듬뿍 담아서 말한다면, 나와 너구리는 사이가 좋고, 내가 너구리를 많이 아낀다는 걸 표현할 수 있어. 그런데, 만약, ‘너구리 자식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하면, 내가 너구리에게 잔뜩 화가 나 있다는 걸 뜻하거든. 느낌이 확 다르지 않니?
딸: 아, 그러니까, 이렇게요?
딸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한다.
나: 엄마 머리는 쓰다듬는 거 아니야.
말만 해서는 느낌이 안 사는데, 그렇다고 딸이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엄마나 아빠 밖에는 없었다. 문제는 엄마, 아빠의 머리를 쓰다듬을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표현한 이 말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딸은 서둘러 팔을 내리고는 게임기의 모동숲 화면 안에 있는 너구리 머리를 꾹꾹 누르다시피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딸: 너구리 짜식 많이 컸어. 이렇게요?
나: 오~ 기발한데?
이렇게 해서 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 순간이 흘러간다.
#일상 #모동숲 #너구리 #자식 #짜식
*딸아이 사진은 딸이 더 어렸을 때 할머니 아이새도를 입술에 바른 모습이 황당해서 찍어놓은 것이고, 내 사진은 작년에 촬영한 프로필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