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주연 Apr 07. 2021

저는 서점 직원이 아닙니다.

인스타그램

최근에 나는 인스타그램에 피드 올리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사실 작년 한 해 동안 번역한 책만 5권이고, 이 중 출간된 책만 3권이다.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는 정말 눈 코만 간신히 뜨면서 일만 하느라 인스타그램이나 페북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3월 후반부터 지금 현재까지는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어서 피드 올리는 것이 더 재미있어진 것도 사실이다. 


내 팔로워 중에는 러시아어권에서 살아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렇다 보니 피드를 올릴 때 꽤 자주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병기하곤 한다. 


나는 러시아어권 문화에 꽤 오래전부터 노출돼 있었고, 러시아의 크고 작은 기관들과 협력을 하고 있으며, 번역 지원까지 받아온 나는 그쪽 사람들의 문화나 사고방식에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가끔 의아한 생각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아래는 조금 전에 러시아어권 팔로워와 나눈 대화이다. 


러시아인 팔로워: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러시아인 팔로워: 혹시 러시아어 하세요? 


이다음부터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러시아어로 대화를 했다. 


나: 네, 전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러시아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합니다. 러시아어 강의도 하고 있고요. 

러시아인 팔로워: 와우! 정말 대단한데요! 저 근데, 혹시 당신한테 한국어로 된 책 주문할 수도 있나요? 

나: 네? 저는 번역가이지, 서점 점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러시아인 팔로워: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나: 혹시 한국에 계시나요? 한국에 계시면 다양한 사이트를 통해서 책을 구입하실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어떤 책이 필요하신 거죠? 

러시아인 팔로워: 한국어로 쓰인 한국 책이 필요해요. 그리고, 저는 러시아에 살고 있어요. 

나: 어머, 전 한국에 사시는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요.  

러시아인 팔로워: 할 수 없죠.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러시아인인지 러시아어를 쓰는 다른 나라 사람인지 알 수는 없으나 나와 대화를 나눈 그분이 사고 싶은 책은 심지어 내가 번역한 책도 아니고, 그냥 한국어로 된 한국책을 사고 싶어했다. 


사실 러시아어를 쓰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고, 이분이 사는 곳에서는 번역가한테 직접 책을 주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하고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독자가 어떤 번역가에게 책을 주문한다면 당연히 번역가가 번역한 책이어야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짧게나마 서점 직원의 애환을(?) 억지로 경험하도록 강요당한 꼴이 되었다. 물론 실제로 서점 직원들이 이런 상황을 접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세상은 넓고 이 넓은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나라들이 존재하며, 이 나라들 안에는 우리의 좁디좁은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이 존재한다. 


 


작가의 이전글 오정희 작가의 단편집 '불의 강'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