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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밤, 젖은 운동화

by EverydayRang 글밥집

젖은 운동화

어제는 밤늦도록 비가 내렸다.
김기사는 온몸이 다 젖고 신발까지 흠뻑 젖은 채,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추석을 앞두고 물량이 늘어나, 요즘은 거의 매일 이렇게 늦는다.

나는 초저녁부터 졸다 말고
그의 밥상을 부리나케 차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찌개를 데우고,
반찬 뚜껑을 열고,
전자레인지에 고기와 생선을 데워 식탁에 올렸다.
그러고는 금세 지쳐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발장 앞에는 젖은 운동화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이미 출근한 뒤였다.

하루 열 시간을 뛰어다니며 배송하는 그의 고됨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김훈 작가가 말했듯,
“고통은 온전히 당사자의 것이고,
곁에 있는 사람은 다만 지켜보는 나의 고통만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그의 고통을 알 순 없다.
다만 첫 해 추석,
그의 배송을 도우며
밤 12시가 넘도록 고층 아파트를 오르내리던 그날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나가떨어졌던 그날,
나는 비로소 조금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의 고단한 하루를 짊어질 순 없지만,
젖은 운동화를 빨고,
도시락 반찬을 만든다.

“오늘도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마.”
그의 짧은 메시지에 알겠다고 답했지만,
장어를 데워줘야 하니
아마 나는 또 꾸벅꾸벅 졸며 그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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