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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의 아내로 산다는 건, 결국 밥의 이야기였다

by EverydayRang 글밥집

택배기사의 아내로 산다는 건,
늘 내가 짐을 지고 뛰는 기분이었다.
무겁고, 버거웠다.

더위와 추위에 몸 상할까, 다칠까.
새벽 출근부터 밤 귀가까지
마음이 놓인 적이 없었다.

십오 년 전,
“남편은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택배기사예요.”
라고 대답하면 잠깐의 정적이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공부를 놓지 못하고 미련을 떨던 사람이었다.
남편은 “그 돈도 안 되는 공부 그만하고,
차라리 택배 같이 하자”고 구박을 하기도 했다.

하루 세 끼 차리는 일이
공부도, 일도 막는 족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밥 하려고 결혼했나’
한숨을 삼키며 살았다.

결혼 25년 차,
그중 15년은 택배기사의 아내로 살았다.
돌아보면 결국, 그놈의 밥이 전부였다.

그 밥 덕분에 오늘,
수천 개의 ‘좋아요’와
수백 개의 응원,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
도시락 하나에 마음을 담아 올렸을 뿐인데
낯선 이들이 “따뜻하다”는 말을 남긴다.

오늘은 메추리알 장조림,
토치로 숯불향을 흉내 낸 제육볶음,
그리고 홍합탕을 끓여 김기사님의 저녁상을 차렸다.

밥이 인생이고, 인생이 밥이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밥의 이야기였다.

밥 만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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