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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의 꿈

by EverydayRang 글밥집

오늘 7세 아이들 졸업 가운을 다리다 문득,
한때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려주길 소망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스물다섯.
철없고, 사랑에 진심이던 새색시였다.
남편은 강남 영어학원의 셔틀버스 기사였다.
내가 가락동 쌍용아파트 앞에서 처음 그 버스에 올랐을 때,
그 사람의 머리 위로 후광이 보였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정말 그랬다.
그는 내게 아저씨였고, 오빠가 되었고, 결국 남편이 되었다.

결혼 초, 나는 남편이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대학에 보내줄 테니 공부라도 해보라며 설득도 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화이트칼라’라는 단어에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내 남편이 셔츠에 다림질 자국을 남기며 출근하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셔틀버스 기사를 그만두고
택배기사가 되었다.
나는 와이셔츠 대신 택배 조끼를 빨고,
구두 대신 운동화를 닦아 놓는다.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고,
그의 점퍼를 햇빛 아래 널어둔다.

이제는 안다.
그때 내가 바랐던 건 ‘양복을 입은 남편’이 아니라
‘존중받는 남편’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존중은 사회의 옷이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걸.

다리미 위에서 김이 피어오를 때마다
그 시절의 나를 다독인다.
철없던 새색시가
이제는 밥과 빨래와 도시락으로
남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가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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